“북한軍 상부 交信내용 감청 도발 두차례 보고…묵살됐다”

  • 입력 2002년 10월 7일 06시 35분


북한통신감청부대인 5679부대가 6·29서해교전 직전인 6월 13일과 27일 북한군의 북방한계선(NLL) 침범 당시 ‘99년 연평해전 이후 한번도 듣지 못한 어휘들이 들어 있는 북한군 상부의 교신내용’을 감청해 북한군이 종전과 다른 양상의 도발을 할 가능성이 크다는 결정적인 정보를 군 수뇌부에 보고했으나 묵살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 국방위 국정감사(4일)에서 군 수뇌부의 ‘서해교전 사전징후 묵살의혹’을 제기했다는 이유로 5일 보직해임된 한철용(韓哲鏞·소장) 전 5679부대 부대장은 6일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이같이 밝혔다.

그는 ‘북한군 상부의 교신내용’은 북한군의 도발 가능성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내용이며 13일 감청 내용 중에는 8자(字)가, 27일 감청 내용 중에는 15자가 핵심 단어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군 기밀이라 더 이상 공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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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장의 발언은 서해교전 이후 군 당국이 “북측의 도발을 예측할 수 있는 관련자료가 없었다”고 주장해 온 것을 반박하는 것이다.

한 소장은 또 “서해교전 2주 전쯤인 6월 14일 국방정보본부장, 정보사령관, 정보융합실장 등 군 정보수뇌부와 전날 발생한 북한군의 NLL 침범 사건을 분석하는 회의가 있었는데 이곳에서도 이 감청 내용을 보고하며 북한군의 ‘돌발행동’ 가능성을 경고했으나 역시 묵살됐다”고 밝혔다.

한 소장은 “그 회의에서는 북한군의 도발 징후를 뒷받침할 만한 북한군의 동향을 촬영한 항공사진도 함께 제시했다”며 “그러나 당시 참석자들은 마음이 ‘딴 곳’에 있었던 것 같고, 결국 전날 북한군의 NLL 침범은 ‘단순 침범’이라는 결론을 내려 예하부대에도 그렇게 전파했다”고 주장했다.

한 소장은 특히 “그 징후들은 적의 도발을 충분히 감지할 수 있는 ‘팩트(fact)들’로 당시 미국에도 제공했다”며 “교전 사흘 뒤인 7월 2일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이 ‘북측의 선제도발 증거를 갖고 있다’고 밝힌 것도 이 정보에 따른 것이었다”고 말했다. 미국은 자신의 정보를 제대로 평가했으나 정작 한국군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 한 소장의 주장이다.

국가정보원의 한 관계자도 “국정원도 당시 서해 쪽 주요 정보 포스트를 통해 서해교전 발발 가능성을 포착했으나 ‘불확실한 감청 정보만으로 남북관계의 악화를 초래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할 필요가 없다’며 이를 묵살했다”고 증언했다.

한편 5679부대가 6월 13일 북한군의 NLL 침범사건에 대해 △연례적인 전투검열 △월드컵 및 국회의원 재·보선과 관련한 한국 내 긴장 고조 의도 배제 불가 △우리 해군 작전활동 탐지의도 중 하나일 것이라고 보고했으나 2, 3번 판단이 삭제된 데 대해 김동신(金東信) 국방장관의 지시가 있었다는 사실을 기록한 경위서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경위서는 5679부대 예하인 701정보단장 윤영삼 대령이 작성한 것으로 “융합실장(정형진 정보융합실장)이 장관님께서 2, 3번 판단 내용은 삭제하여 전파하라고 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이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주장해온 김 장관과 정 실장의 주장과는 상반되는 것이다.

국방부는 5일 한 소장에 대해 ‘해당직무를 수행할 능력이 없다고 인정될 경우 보직해임한다’는 군 인사법에 의거해 보직해임했다. 국방부는 또 김승광(金勝廣·육군 중장) 국방개혁위원회 부위원장을 단장으로 합동참모본부 전비태세검열실, 국방부 감사관실, 정보분야 관계자 등 10명의 조사단을 투입해 7일부터 한 소장 발언의 진위를 확인할 특별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윤상호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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