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남성욱/이산상봉 시간이 없는데…

  • 입력 2002년 9월 9일 18시 08분


이번 제4차 남북적십자회담은 북한이 이산가족, 국군포로 및 납북자 문제와 최근 한반도 정세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를 판단할 수 있는 호재였다. 남북은 지난달 경제협력추진위를 통해 남이 북에 쌀과 비료를 지원하고 경의선을 연결하기로 합의하고 12년 만에 통일축구대회를 개최하여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이달 중에 군사실무회담을 개최하고 북측이 부산아시아경기대회에 참가하는 등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양측의 노력이 계속되는 상황이라 인도적 성격의 적십자회담에 거는 기대는 내심 작지 않았다.

▼부자-형제 만남 급격히 줄어▼

그러나 회담 결과는 기대와는 달리 최근의 한반도 화해 분위기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 물론 이번 회담에서 이산가족 면회소를 금강산 지역에 설치해 운영키로 합의하고 면회소 완공 뒤 이산가족 상봉을 정례화하기로 하였으며 경의선 완공 후 서부지역 면회소 설치를 논의키로 한 것은 성과다. 특히 남측이 그동안 광의의 이산가족문제로 제기하였던 국군포로와 납북자 가족의 상봉 문제를 북측이 회담에서 거론한 것은 그동안 국군포로와 납북자는 단 한 명도 없고 6·25전쟁 당시 의거 입북한 장병과 민간인만 있다는 일관된 입장을 바꾼 것으로 매우 전향적이라고 할 수 있다.

북측이 이처럼 과거와 다른 입장을 보인 것은 최근의 한반도 주변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특히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방북 과제 중의 하나가 납치 일본인 문제의 해결임을 감안할 때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에 대한 남측의 요구에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면 모순이라는 생각을 북측도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생존자들이 많지 않아 실제로 확인단계에 들어가더라도 북측으로서는 손해될 것이 별로 없으며, 고이즈미 총리와의 회담을 앞두고 있는 김정일 위원장으로서는 다소 탄력적인 자세를 보이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북측 대표단이 김 위원장의 의사가 반영된 것이라고 홍보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였을 것이다.

국군포로 및 납북자 문제에 대한 북측의 ‘의외의 제의’를 제외하고는 회담 결과는 미흡하다. 남측 대표는 김 위원장의 발언까지 인용하며 성과를 내야 한다고 강조하였지만 문제의 시급성을 감안할 때 너무 한가한 합의에 머물렀다는 지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남측의 ‘확정’이라는 문구가 북측에서는 ‘단순협의’로 상이하게 발표된 것은 회담장에 마주앉은 대표단의 동상이몽을 적나라하게 반영한다. 이번 회담에서도 면회소 설치와 정례적인 상봉과 같은 초보적인 숙원들조차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았다. 특히 북측이 새로운 면회소를 건설할 때까지 금강산 지역의 기존시설을 이용해 면회를 계속하자는 남측 제안을 수용하지 않는 것은 정치적 부담을 이해하더라도 이산가족 상봉 실현에 대한 북측의 진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6·15 공동선언 제3항은 이산가족 등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해결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당사자들이 고령이고 매년 사망자가 늘어나는 등 해를 거듭할수록 문제 해결이 어려워지고 있다. 서로의 입장 차이로 구체적인 이행일자를 명시하는 데 실패한 것은 이산가족 당사자들의 절박한 사정을 무시한 것이다. 최근의 화해분위기를 일시적인 이벤트가 아니라 제도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남북은 이산가족 문제와 국군포로 및 납북자 문제에 다음과 같은 방향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첫째, 이산가족 문제와 국군포로 및 납북자 문제를 보다 철저하게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접근하여야 한다. 평화정착과 통일로 가는 길은 물질적 지원도 필요하지만 사람간의 만남이 우선되어야 한다. 문제를 이데올로기적인 관점이 아닌 인간애에서 접근해야 한다.

▼상설 면회소 설치 서둘러야▼

둘째, 남북 양측은 문제의 시급성을 인식하여야 한다. 이산가족, 국군포로 및 납북자의 1세대 생존율이 급격히 하락해 부모 자식간, 형제간 상봉보다는 조카 등 친인척 차원으로 상봉의 수준이 낮아지고 있는 것은 심각한 일이다. 아마도 몇 년이 지나면 과거와 같은 감격적 상봉은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지도 모른다.

끝으로 우리 정부는 미국의 미군유해 찾기 노력과 일본의 납치 일본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를 배워야 한다. 유해 한 구라도 끝까지 찾아내려는 미국 정부의 끈질긴 노력과 재북 일본인 문제를 북-일회담 의제로 제기하는 고이즈미 총리의 자세는 국군포로문제 해결에 소극적이었던 우리 정부에 많은 부분을 시사하고 있다. 이산가족 문제가 시급성의 문제라면 국군포로 문제는 자국민 보호라는 정부의 기본임무를 재인식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정부의 적극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북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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