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우상/여성 외교관

  • 입력 2002년 7월 14일 18시 31분


그리스 신화에서 신들의 사자(使者)로 불리는 헤르메스는 자태가 화려하고 매력적이며 책략을 잘 부리고 교활한 신으로 묘사된다. 헤르메스는 태어나자마자 형 아폴로의 소 50마리를 훔쳐 동굴에 숨겨두고 다시 잠자리로 돌아와 태연하게 잠을 잤다고 한다. 이러한 지략이 제우스의 눈에 띄어 이후 제우스의 외교 임무를 맡게 된다. 헤르메스는 첫 번째 여자인 판도라에게 아첨과 속임수의 능력을 주었고 전령(傳令)들에게는 우렁찬 목소리와 기억력을 주었다. 헤르메스를 부정적으로 보는 그리스인들도 많았지만 화려한 자태와 탁월한 외교력으로 그는 지금까지 ‘외교관의 신’으로 기억되고 있다.

▷요즘 헤르메스는 최고급 디자이너 패션 상표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화려한 디자인과 색상으로 유명한 헤르메스(프랑스어로는 에르메스)는 세계의 부유층 신사숙녀들이 즐겨 찾는 브랜드다. 세계 각국의 외교관들 역시 헤르메스 정장이나 액세서리를 애용하는 주요 고객층이다. 외교관은 자국의 국왕이나 정부 수반을 대표하기 때문에 이들의 지위와 위엄을 나타내기 위해 화려함을 대표하는 헤르메스 상표를 애용하는 것 같다.

▷현대 외교는 과거 어느 때보다 더 섬세하고 정교한 의전과 협상 능력을 필요로 한다. 국가간의 경제 사회 문화적 상호 의존도가 높아짐에 따라 예전보다 훨씬 다양한 영역에서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고, 이를 원만하게 해결할 임무가 주로 외교관들에게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교관들에게는 헤르메스의 화려함뿐만 아니라 헤르메스의 외교적 기지와 협상 능력이 더욱 절실해졌다. 그런데 화려함과 협상력과 같은 외교관의 자질은 우리나라 여성들에게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특성들이다.

▷여러 나라를 여행해 보면 우리나라 여성의 멋이 상대적으로 출중하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우리 여성들은 대체로 헤르메스 상표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자신을 아름답게 가꿀 줄 알 뿐만 아니라 사회적 경쟁력이나 사교적 수완도 뛰어나다. 최근 외교관을 뽑는 외무고시에 합격한 인재 중 거의 50%를 여성이 차지했다. 상당수 국내 대학의 정치외교학과 재학생 중 여학생의 비율 역시 50%에 육박하고 있다. 여성의 사회 진출 러시와 함께 우리 여성의 능력은 앞으로 외교분야에서도 더욱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우리 여성의 화려함과 출중한 외교적 능력이 합쳐져 뛰어난 여성 외교관이 많이 배출되기를 기대한다.

김우상 객원논설위원·연세대 교수·정치학 kws@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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