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한국-이탈리아전 1시간 녹화중계

  • 입력 2002년 6월 24일 10시 32분


월드컵대회에 출전한 한국축구대표팀의 연이은 승전보에 침묵으로 일관하던 북한이 18일에 있었던 한국-이탈리아전 경기를 23일 밤 방영했다.

북한 조선중앙TV는 23일 오후 10시부터 한국-이탈리아 16강전 주요 장면을 1시간 분량으로 편집해 중계 방송했다.

중앙TV는 북한 아나운서와 해설가의 더빙을 통해 "남조선팀은 54년 (월드컵에) 첫 출전한 뒤 거의 참가하지 못하다가 86년부터 5회연속 출전했고 이번이 6번째 출전이다"며 "14번 경기중 10번을 지고 4번을 비겨 이긴 적이 한번도 없었는데 이번 (월드컵에서의) 승리로 (남한) 국민의 사기가 높아졌다"고 전했다.

중앙TV는 이어 "남조선은 폴란드를 2대0, 포르투갈을 1대0으로 이기고 미국과 1대1로 비겨 조1위로 2단계(16강전을 뜻함)에 올라왔다"며 그동안의 한국팀 경기결과를 정리한 뒤 "이탈리아는 1966년 제8차 세계축구선수권대회에서 우리(북한)에게 패했다"고 덧붙여 36년전 우승후보 이탈리아를 이기고 월드컵 8강에 진출한 북한축구팀 활약상을 떠올렸다.

중앙TV는 '2002 한일월드컵축구대회' 대신 '제17차 세계축구선수권 대회'라고 이번 대회를 불렀으며 중계방송 도중 관중석 아래쪽에 부착된 대형 태극기가 여러 차례 TV카메라에 선명하게 포착됐다. 그러나 '대∼한민국' '오∼필승 코리아' 등의 응원구호는 현장 소리를 작게 하고 더빙 소리를 높이는 기술적 처리로 거의 들리지 않게 했다.

거스 히딩크 감독과 관련, 북한 방송은 네덜란드 축구대표팀과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팀 감독 등을 지낸 유명한 히딩크가 남조선팀을 감독하고 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북한 방송은 이달 1일부터 월드컵 경기를 녹화 중계하면서도 한국에서 열린다는 사실은 밝히지 않았었는데 이날 방송에서는 남조선팀을 언급하면서 '자기 나라에서 열리는'이라고 부연 설명, 월드컵대회가 한국에서 개최된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정부 관계자는 "한국팀이 예상과는 달리 스페인까지 꺾고 월드컵 4강에 오르면서 한국경기를 더 이상 빼놓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 같다"며 "한국-이탈리아전이 방영됐기 때문에 22일 끝난 한국-스페인 8강전과 25일 열리는 한국-독일전 4강전도 순차적으로 방영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또다른 정부 관계자는 "식량난과 경제난이 심화된 이후 식량을 구하기 위해 친척집을 방문하는 것이 일반화돼 북한의 정보유통 속도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빠른 편이다"며 "아리랑축전 관람과 관광, 사업 등으로 외국인들이 북한을 많이 왕래했으며 우리나라의 해외방송을 통해 월드컵 소식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어 이미 많은 북한 주민들이 한국의 월드컵 개최 사실과 승리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성동기기자 esp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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