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 “원점서 다시 시작”

  • 입력 2002년 4월 3일 17시 59분


“모든 것을 원점에서 새로 시작한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전 총재는 3일 대선후보 경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더 이상 ‘이회창 대세론’에 안주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최근 들어 당내 자체조사에서도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와의 지지도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것으로 나타난 현실을 인정하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실제로 최근 당 기획위원회는 “앞으로 1주일 안에 이 전 총재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소리가 나오지 않으면 대통령선거 본선에서 진다”고 건의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영남 출신에다 보수 성향 중진인 최병렬(崔秉烈) 의원이 대선후보 경선 도전장을 낸 것도 이 전 총재로서는 예기치 않은 변수였던 듯하다.

이 전 총재가 이날 “지금 급진세력이 좌파적인 정권을 연장하려 하고 있다”며 직접 민주당 노 후보를 겨냥한 이념공세의 포문을 연 것도 더 이상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한 측근은 “어정쩡하게 모든 표를 잡을 수 없다. 색깔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이 전 총재의 이념공세엔 최 의원의 보수색깔을 무력화하기 위한 계산도 깔려 있다는 게 당 관계자들의 해석이다. 특히 최 의원이 5일 경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이 전 총재를 향해 ‘보수와 진보, 양쪽 모두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요지의 비판론을 전개할 것으로 알려져, 이에 대한 선제공격의 의도도 없지 않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이 전 총재는 ‘귀족적 이미지’ 등 자신에 대한 부정적 인상을 불식시키기 위한 다각적인 방안을 모색 중이다. 그가 기자회견문에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겠다’ ‘정치를 시작한 6년 전 초심(初心)으로 돌아가겠다’는 문구를 넣은 것도 그 같은 변신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측근들은 설명하고 있다.

이 전 총재의 회견을 지켜본 한 중진의원은 “이젠 ‘이회창 대세론’이 아니라, ‘이회창 필승론’으로 승부를 걸 때다”라고 소감을 말했다. 이 전 총재의 ‘공격적 변신’이 향후 지지도 반전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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