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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10월 31일 19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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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권노갑(權魯甲) 전 최고위원의 한 측근은 31일 당내 일부 소장파 의원들의 정계은퇴 요구에 대해 “만만한 게 권노갑이냐”라고 흥분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소장파 의원들의 공세가 끝내 정계은퇴 요구로까지 발전하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이훈평(李訓平) 의원은 “정계은퇴를 요구하려면 권 전 최고위원이 책임있는 자리에 있어야 하고, 뭘 잘못했는지 충분한 이유와 근거가 있어야 한다”며 “밑도 끝도 없이 정계은퇴를 요구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그는 이어 “문제가 있다면 당기위에 회부하든지, 사법처리를 요구하든지 해야지 한나라당의 제기한 의혹을 그대로 받아들여 정계은퇴를 요구하는 것은 ‘한나라당 2중대’와 같은 행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재환(趙在煥) 의원도 “지금까지 대통령에게 누가 될까봐 참아왔으나 이제 도를 넘어선 것 같다”며 “우리가 자제해온 것이 도리어 모든 책임을 우리에게 뒤집어씌우는 행태를 조장한 것 같다”며 “이번 기회에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하지만 권 전 최고위원 자신은 외부와의 접촉을 피한 채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측근들은 “영감이 소장파 의원들과 낯을 붉히고 싸우는 것 자체를 싫어한다”며 “영감이 불쌍하다는 생각까지 든다”고 말했다. 다만 이들은 “때가 오겠지”라며 모종의 대응책을 준비 중임을 시사했다.
<윤영찬기자>yyc11@donga.com

▼박지원수석 “아무말도 않겠다” ▼
박지원(朴智元) 대통령 정책기획수석비서관은 31일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아무 것도 없다”고 입을 다물었다. 측근들도 “박 수석은 5월부터 당정쇄신 얘기가 나올 때마다 퇴진 대상으로 거명돼온 만큼 이번에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박 수석은 자신이 뭐라고 얘기를 해봤자 누군가 ‘희생양’을 찾고 있는 민주당 내 쇄신론자들을 더욱 자극할 뿐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심기가 편치는 않은 모습이다. 당에서 결국 실명으로 정계은퇴를 요구한데 대한 소감을 묻자 박 수석은 “기자들도 그러는 게 아니다”며 답변을 피했다.
박 수석의 주변에선 당쪽에 대해 대놓고 불만을 말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한 측근은 “솔직히 박 수석만큼 이 정권을 위해 열심히 일한 사람도 거의 없다”며 “10·25 재·보선 패배와 박 수석이 무슨 관계가 있다고 퇴진 운운하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이 측근은 또 “특정인을 거명하면서 정계은퇴 운운하는 것은 정치도의에도 어긋난 일”이라며 “박 수석이 은퇴해서 민심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하겠지만, 지금 국면은 그런 식의 대처로 민심을 되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솔직히 지금 여권에서 정치 코디네이터로서의 박 수석을 대신할 만한 인물도 별로 눈에 띄지 않는데, 무조건 퇴진을 요구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순수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윤승모기자>ysm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