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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10월 29일 22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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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모두 숨막히는 시소게임이 되리라는 예상을 했으나 결과는 크게 빗나갔습니다.
정책대결이나 인물경쟁이나 선거전략이나 다 소용 없는 말이 되고 말았습니다.
민심의 표현입니다.
분노의 일갈(一喝)입니다,
이 나라 정치에 대한 분노, 특히 정국 리-드에 책임이 있는 집권당에 대한 분노입니다.
국민은 화가 나 있습니다.
어떤 특정한 정책이나 사안에 대한 불만이 아니라 전체 판에 대한 염증입니다.
여당은 자잘구레한 원인분석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크게 보아 자신이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현실을 냉정히 인정하고 자성해야 합니다.
역사상 최초의 정권교체를 이루었다고 자부하며 민주화를 바라는 국민의 절대적 지지가 따르리라고 믿었던 민주당 정권이 어찌하여 이토록 신속히 침하하고 말았는가 하는 점에 대해 근본적인 분석이 필요합니다.
야당의 폭로, 흑색선전이나 보수언론의 한풀이식 때리기 보도공세가 분명 여당 득표에 장애가 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항상 있어 왔거나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성질의 것입니다.
즉 변수가 아니라 상수인 것입니다.
상수를 가지고 불평하거나 변명해서는 안됩니다.
여당이야말로 자기 자신의 분명한 무기를 갖고 있어야지, 남의 호의를 기대한다거나 요행에 편승할 잔꽤를 부려서는 안됩니다.
결과적으로 여당은 대 국민 이미지 구축에 실패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열심히 하느라 했고 또 웬만큼 성과도 거두었는데 국민의 평가는 왜 이리 인색하냐고 야속해 할 수도 없게 됐습니다.
평범한 진리를 너무 가볍게 보아 넘긴 데 대한 응보입니다.
국민의 신뢰가 없으면 아무리 해도 안됩니다.
신뢰를 얻으려면 국민이 바라는 모습을 갖추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변화 시키는 노력을 보이지 않으면서 국민에게 이해와 지지를 요구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국민이 바란다면 그대로 해야 합니다.
대세를 거스른다면 그것은 고집과 오만 밖에 되지 않으며 그래서야 신뢰가 깃들 리 없습니다.
물론 항상 잘 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때때로 찾아오는 변화와 수정의 기회를 순리대로 이용하지 못하고 번번히 흘려 보내 버리는 그 배짱과 구태의연함에 일반 국민 뿐만 아니라 당내 의원들까지도 놀라고 있는 실정입니다.
몇 번 쇄신의 챈스를 무산 시킨 결과가 이처럼 뼈 아픈 것입니다.
국민은 바보가 아닙니다.
지극히 객관적 입장에서 보기 때문에 오히려 더 냉철하고 현명합니다.
특히 지식인 사회에서의 냉소는 정말 폭발적인 전파력이 있는 것입니다.
왜 지식인들에게 조소를 받는 비참한 지경이 되었습니까?
기득권 세력에 대항하는 개혁정책을 어렵사리 수행해 가면서도, 개혁을 지지해 주어야 할 지식인들로부터조차 따돌림을 당하는 이 억울한 처지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입니까?
과연 무엇을 위하여, 누구를 위하여 그런 수모를 감수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사람들이 국민의 정부에 남달리 기대한 것 중에 인사를 공정히 하라는 것과 이권을 둘러 싼 부정부패를 없이 하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초기에 조금 신경을 쓰는 듯 하더니 후반부로 오면서 흐리멍텅해졌고, 근래에 들어서는 아예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기를 포기한 것이 아닌가 하고 자체 내에서도 의아해 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출범 초기에 남다른 기대가 있었기에 오늘 실망은 그만큼 큰 것입니다.
초심을 유지하여 잘 이끌어 갔으면 계속 국민의 지지를 받았을 정권이 방심과 오만으로 중간 실족의 위기에 봉착해 있습니다.
이제 이대로는 도저히 안되겠다는 사실이 명확해졌습니다.
시급히 국민의 신뢰를 얻는 작업에 착수해야 합니다.
그냥 이대로 가다가 모처럼 얻은 정권을 허망히 잃어 버릴 수는 없습니다.
이 땅에는 개혁정권이 최소한 한 텀(term) 정도는 더 이어져야만 할 역사적 필요성이 있습니다.
지나간 역사 속에서의 행적으로 보아 참회하고 자숙해야 할 집단인 현 야당이 마치 때를 만난 것처럼 기세를 올리고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다시 그들에게 정권을 돌려 준다는 것은 우리가 역사적 책무를 다하지 못하는 결과가 됩니다.
우린 아직 할 일이 많이 있습니다.
지난 정권의 세월에서 보류되고 지체되었던 개혁을 더욱 추진해 나가야 하고, 민족의 사활이 걸린 남북통일의 초석도 굳건히 다져야 합니다.
모처럼 시동이 걸린 이 과업을 여기서 맥이 끊기게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일시적으로 타성과 오판에 젖어 국민의 질타를 당했다고 해서 그대로 주저 앉을 수는 없습니다.
그 어려웠던 시절 사심 없이 단결하여 정권교체를 이루어 냈던 의기를 다시 한 번 발휘하여 우리의 모습을 쇄신정돈하고, 이를 바탕으로 개혁정권 재창출을 쟁취해야 합니다.
그냥 이대로 가면 더 나빠지고 결국 패배할 것입니다.
지는 게임을 해서는 안됩니다.
져도 할 수 없다는 패배의식, 이대로 가더라도 혹시 이길 수도 있지 않느냐는 요행심리, 이런 것은 안됩니다.
반드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여 이기는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모두 마음을 비웁시다.
자신과 파벌의 이익을 떠나 오직 민심의 흐름에 충실히 따릅시다.
그동안 저희 소장층 의원들도 소금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음을 인정하고 반성합니다.
그동안 당의 총재와 지도부에게 이런저런 요구를 하고 촉구성명도 발표하고 했습니다만, 그리고 그것이 아무 소용이 없자 실망에 빠진 적이 여러번이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요구, 건의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식의 소극적·의타적 태도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대신 자체적인 대안을 가지고 당내외에서 폭넓은 여론을 형성하고, 그 결집된 여론을 스스로 추진하는 적극적·자주적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앞으로 당내 중진과 소장층 간의 대화·협력이 필요합니다.
대선주자들과 의원들간, 또 주자들 상호간의 대화도 있어야 합니다.
해결을 기다리는 여러 가지 과제가 있습니다.
당의 자율성, 민주성을 확보하는 문제, 당헌과 시스템을 개선하는 문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이미지를 쇄신하는 문제, 대선후보 선출의 절차와 시기에 관한 문제,
이런 것들이 더 이상 밀실에서 일방적으로 논의되고 결론지어져서는 안되고, 당당한 공론화(公論化)를 통해 국민과 당원의 여론이 수렴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번 재선거에 나서서 분투하였으나 민심의 역풍을 만나 낙선하고 만 후보들은 말합니다.
제발 이 참패를 교훈으로 삼아 당을 재건함으로써 전화위복의 기회를 만들어 달라고 말입니다.
당장 당과 후보들에게는 쓰라린 상처가 되겠으나, 이것이 당을 선회시켜 회생시키는 계기가 되기 위해서라면 차라리 참패가 낫다는 생각이 듭니다.
후보들 말대로 이 난관을 극복하여 전화위복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사즉필생(死卽必生) 유일한 길입니다.
2001. 10. 29.
국회의원 신 기 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