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유출 실태와 파장]黨 대외비 문건 통째로 새기도

  • 입력 2001년 10월 22일 18시 49분


경찰의 내부 정보보고 문건이 한나라당에 유출돼 정국에 큰 파문을 일으키자 공직사회에 비상이 걸렸다.

특히 현정권이 임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권력 누수현상이 시작될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데다 내년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공무원들의 줄서기가 본격화될 조짐이어서 공직사회의 내부 정보 유출현상이 갈수록 심각해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나라당은 “이번 경찰 동향보고서 유출사건은 공직사회의 줄서기 행태와는 전혀 무관한 사안”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평소 제주도지부와 업무 협조 관계에 있던 정보과 형사에게 제보내용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정보를 입수하게 된 일회성 사안이라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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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정보유출파문 사례

그러나 한나라당은 이번 사건과는 별개로 정부 핵심기관에 소속된 공무원 등 다양한 통로를 거쳐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부인하지 않고 있다.

단적인 예로 지난달 국회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이 폭로한 안정남(安正男) 전 건설교통부 장관의 서울 강남 부동산 매입 건 등은 모 기관에서 흘러나온 정보가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후문이다.

안 전 장관과 관련된 여러 가지 첩보를 수집, 검증하는 과정에서 평소 한나라당측과 가까운 모 기관의 직원으로부터 부동산 매입 건에 관한 얘기가 흘러나왔고, 이를 단서로 해 추가 확인을 거쳐 폭로에 나섰다는 것.

한나라당은 또 최근 정부 기관의 한 인사로부터 ‘현 정부에서 고위직을 지낸 모 인사가 차명계좌에 거액을 관리하고 있다’는 제보를 받고 확인 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는 정부 기관이 은밀히 파악하고 있는 내부 정보는 물론 민주당의 대외비 문건까지 한나라당에 통째로 넘어오는 사례까지 나타나고 있다.

국정감사 막바지인 지난달 말 한나라당 P의원의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 팩스로 민주당 대표와 기조위원장 등 핵심 당직자의 자필 결재 서명이 담긴 대외비 문서 2건과 민주당 당직자들 간의 알력관계가 소상하게 적힌 문건이 전송됐다. P의원은 민주당 쪽에서 함정을 판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어 문건의 진위 여부를 은밀히 확인한 끝에 가짜는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으나 이를 공개하지는 않았다.

최근에 불거진 ‘이용호(李容湖)게이트’나 벤처기업 주식분쟁사건과 관련된 각종 정보는 사건 당사자들 사이에서 갈등이 빚어지면서 내부로부터 흘러나온 게 대부분이었다는 것. 검찰의 한 간부도 “이미 정부 기관 내에서 지역 정서나 정치적인 성향에 따라 패가 갈렸다는 소문이 나돈 지는 오래 됐다”며 “그러나 야당에 넘어간 정보들은 대부분 사건 관계자들간의 알력 때문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의 K의원은 “학연 지연이 있는 현직 고위공무원들이 올 들어 갑자기 전화를 걸어와 안부를 묻는 일이 잦아졌지만 ‘줄서기’로 보기는 어렵다”며 “다만 현정부 들어 자의반 타의반으로 퇴직한 수사기관이나 경제 관련 부처 고위 간부 등 불만세력 들이 연줄을 통해 연결되는 경우는 꽤 있다”고 귀띔했다.

그는 “이들 중 일부는 당의 고위 당직자와 직접 면담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며 “이들 중에는 현정부의 대북협상과정 등 극비에 가까운 정보를 갖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중요 인사도 포함돼 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정보유출현상은 정부투자기관에서조차 일어나고 있다. 호남 출신인 한 정부투자기관 이사장은 “최근에는 내부의 회의자료까지 즉각 유출돼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형편”이라고 한숨지었다.

<김정훈기자>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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