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외교 발언 파문]제 발등찍은 '안방 실언'

  • 입력 2001년 3월 23일 23시 35분


이정빈(李廷彬) 외교통상부장관이 23일 한미 및 한―러 정상회담과 관련한 민감한 외교협상과정을 공개한 것은 외교 수장으로서 적절하지 못했다는 지적과 함께 앞으로 대미 및 대러 외교에도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특히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 출범 이후 한미 공조체제 확립이 시급한 상황에서 자칫 미국을 자극할 수 있는 내용이 공개된 데 대해 우려하는 것은 물론 러시아도 국가미사일방어(NMD)체제 및 주한미군 철수문제를 제기한 것이 밝혀진 데 대해 상당히 불만스러워 할 것으로 염려했다.

▽외교적 부담〓이 장관이 미국과 러시아 등 주변강국의 요구를 어느 정도 차단했다는 점에서 나름의 ‘외교적 독자성’을 평가해야 한다는 시각도 없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교사령탑이 공개하지 말아야할 외교 기밀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국가적 신의의 추락은 물론 한국 외교의 입지를 스스로 좁히는 우를 범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날 이 장관은 NMD 문제와 관련해 명시적 동의를 요구하는 미국과 명시적 반대를 촉구한 러시아의 ‘압력’을 이겨내고 한국의 의사를 관철함으로써 한미 및 한―러 정상회담에서 한국측이 성공적으로 대응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의 발언은 ‘전략적 모호성’을 스스로 저버린 것이라는 측면에서 앞으로 NMD 문제가 다시 불거질 때 한국측이 이에 대한 보다 명확한 견해를 밝히지 않을 경우 미국과 러시아 어느 쪽으로부터도 신뢰를 얻지 못하는 결과를 부를 수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러시아는 왜 주한미군 철수문제를 제기했나〓주한미군 문제는 지난해 1차 남북 정상회담에서 북측이 사실상 ‘묵인’한 사안이다. 그럼에도 러시아측이 굳이 이 문제를 제기한 것은 미국의 NMD 추진에 제동을 걸기 위한 의도가 강하다는 분석이다.

러시아측은 한국이 수용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주한미군 문제를 건드림으로써 미국의 NMD체제 강행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표명하고 앞으로 NMD와 주한미군 문제를 연계시킬 수도 있음을 내비친 것이라는 설명이다.

<하태원기자>scooo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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