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충식 한적총재 사퇴]"정부·정보기관 간섭많아…"

  • 입력 2000년 12월 24일 18시 52분


“차라리 (총재로) 안 가느니만 못한 결과가 되고 말았습니다.…”

대한적십자사 총재 취임 이래 바람잘 날 없는 5개월을 보낸 끝에 사퇴한 장충식(張忠植)총재는 24일 “능력도 소신도 없는 사람이 중책을 맡아 바보스러운 결과를 낳고 말았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광진구 구의동 워커힐 아파트 자택에서 이뤄진 1시간 반 동안의 단독 인터뷰에서 자신의 심경을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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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총재는 일련의 파문에 대해 “부덕의 소치”라고 했지만 북측에 비밀리에 전해진 ‘유감 서한’이나 ‘도피성 일본행(行)’ 문제에 대해서는 박기륜(朴基崙)사무총장과의 앙금이 가시지 않은 듯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3차상봉에 짐되기 싫었다▼

―전격사퇴를 결심한 배경은….

“일련의 사태를 통해 식견이나 인격 등에 하자가 많은 사람처럼 부각돼 하루라도 빨리 그만두려고 했다. 일본에 다녀온 뒤 국민이 특히 많은 실망을 한 것으로 안다. 앞으로 있을 3차 이산가족상봉이 나로 인해 지장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심리적 중압감도 작용했다.”

―월간지와의 인터뷰 내용보다는 북측의 항의에 대한 대응이 잘못됐다는 지적이 많은데….

“인터뷰 내용의 대의(大義)는 남북관계의 성공적 정착이라는 것을 (관계자들에게) 설득하고 (북측에) 당당하게 대처하고 싶었지만 주위에서 그렇게 권유하지 않았다. 내 발언으로 인해 문제가 발생한 상황에서 실무자들의 조언을 무시할 수 없었다.”

▼유감서한 관련 함구령 받아▼

―비밀리에 전해진 대북 유감 서한이나 도피성 일본행도 본인의 의지와는 다른 것이었다는 말인가.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일본행에 대해서는 내부에서 찬반 양론이 팽팽했다. 하지만 사무총장은 ‘2차 이산가족상봉이 깨질지 모른다’는 이유를 들며 일본에 가야 한다는 당위성만을 강조했다. 유감 서한의 경우 내가 모르게 전달된 것은 아니지만 ‘함구해 달라’는 주문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백번 공개했어야 하는데….”

―이산가족상봉 문제의 비중상 정부나 국가정보원 등도 유감 서한 발송이나 일본행 결정에 관여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정부와 그다지 논의하는 편이 아니다. 사무총장도 대정부관계에서 독자적 입장을 취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산가족 문제를 다루는 한적의 위상과 직무의 독립성에 대한 요구가 강해질 텐데….

“대북관계 전문가 영입이 절실하다. 현재의 구조로는 정부나 정보기관의 간섭이 많아 대북사업 진행과정에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 없다. 권한도 없고 의견을 낼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이산가족 문제는 어떻게 풀어가야 하나.

“북으로서는 가장 부담스러운 일이다. 100명씩 명단을 선정해 상봉하는 방식으로는 이산가족 문제의 해결은 요원하다. 하지만 금강산에 상설면회소를 설치하자는 북측의 주장은 현실 여건상 잘못된 것이다. 우리가 아량을 많이 베풀어야 한다.”

<하태원기자>scooo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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