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 총재 "국정원 예산 삭감돼야"

  • 입력 2000년 12월 11일 18시 53분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가 국가정보원의 새해 예산안을 ‘원안통과’시켜주겠다던 당초의 입장을 바꿔 ‘대폭 삭감’을 주장하고 나섰다. 이총재는 11일 총재단회의가 시작되자마자 “다른 일반예산을 삭감 또는 동결키로 한 우리 당의 기본방침에 반해 국정원 예산은 증액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자 당내에서조차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이미 11월30일 국회 정보위에서 국정원 예산을 심의할 때 당 소속 정보위원들의 ‘원안통과’ 의견을 그대로 수용했던 것과 180도 달라진 얘기였기 때문이다.

더욱이 국정원의 예산안 자체가 2급비밀이고, 국회법은 국정원 예산에 대해서는 정보위에만 심의권을 부여하고 있어 정보위에서 통과된 예산안은 예결위에서 삭감 자체가 불가능하다.

또한 새해 국정원 예산은 올해에 비해 증액이 3%에 그쳐 예산규모만 놓고 보면 인건비 상승분만 감안해도 사실상 증액으로 보기 어렵다는 게 예산전문가들의 평가다. 한나라당의 정보위 소속 의원들도 “예상했던 것만큼 예산을 늘리지 않아 이총재의 재가를 받아 원안통과시켜줬다”고 말할 정도.

이같은 전후사정을 살펴볼 때 이총재가 국정원 예산을 문제삼고 나선 것은 당장 국정원의 예산 삭감이 목표가 아니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우선 주무부처인 통일부를 제쳐놓고 남북문제에 지나치게 개입하고 있는 국정원을 견제하기 위한 ‘압박용’이라는 해석이 많다. 최근 국정원을 비롯한 사정당국이 일부 한나라당 의원들을 뒷조사하고 있다는 첩보가 이총재에게 보고됐고, 이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경고메시지라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또 중장기적으로는 대통령선거를 1년 남겨둔 내년을 겨냥한 발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즉 대선이 치러지는 2002년도 국정원 예산을 묶어두기 위한 사전포석이라는 것. 이총재가 국가기밀이라는 이유로 국정원 예산의 실질적인 심사를 가로막아온 여러 법조항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를 의식한 문제제기로 보인다.

<김정훈기자>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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