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상봉 스케치]"앗, 선물 잘못 가져왔네"

  • 입력 2000년 12월 1일 19시 53분


“아차 이 생각은 미처 못했는데….”

꿈에도 못 잊던 가족을 만난 많은 이산가족들이 선뜻 내밀었던 선물 때문에 뒤늦은 후회를 해야 했다.

치약 양말 등 생필품은 8월의 1차 상봉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선물보따리의 인기종목. 하지만 1차 때와 달리 추운 날씨 때문에 이번 상봉에서는 내복 등 방한의류가 신종 인기종목으로 자리잡았다. 1일 개별상봉을 위해 호텔에 모인 이산가족들은 한결같이 옷가지로 가득 찬 커다란 여행가방을 들고 있었다.

그러나 그 가운데 가볍고 따뜻하다는 이유로 대부분이 준비한 오리털파카가 문제였다. 드라이클리닝을 해야 원형을 유지하는 것이 오리털파카의 특징. 북쪽의 세탁사정을 잘 모른 채 이를 준비한 이산가족들은 ‘괜히 걱정거리만 늘려주는 것 아닐까’하는 생각에 마음이 편칠 않았다.

큰아버지 김응용씨(61)에게 선물할 내의 12벌과 오리털파카 2벌을 준비한 조카 김유진씨(25)는 그 같은 사실을 뒤늦게 알고 부리나케 물빨래가 가능한 파카로 바꿔왔다.

그런 혼선은 북측도 마찬가지. 북한의 저명한 언어학자 김영황씨(69)는 누나 김옥인씨(81)에게 보여주려고 자신의 생일잔치를 촬영한 비디오테이프를 가져왔으나 남북한의 녹화방식이 틀려 정작 내용을 함께 볼 수 없었다.

서울 가족의 모습을 비디오로 담아 평양의 아들에게 보여주려던 한정서씨(79)도 같은 경우로 낭패를 봤다. 대북사업을 하는 사업가 이모씨(36)는 “북측에 보내는 선물은 유지보수에 별 어려움이 없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아무리 좋은 물건이라도 쉽게 고장나거나 소모품이 떨어져 못쓰는 것은 오히려 부담스럽다는 것.

<전창기자>j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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