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상봉 그이후]남북 언어-생활 이질화

  • 입력 2000년 8월 20일 18시 37분


‘그동안 저희들을 위하여 때식도 잠도 잊으시고 모든 성의를 깡그리 쏟아부어주신 리금주선생 등 이 호텔 모든 종업원들에게 충심으로 감사드립니다.’

18일 북측 이산가족 상봉단의 정춘모씨는 서울 워커힐호텔을 떠나면서 이른바 ‘주체필법’으로 휘갈겨 쓴 짤막한 메모를 남겼다. 우리에게 익숙지 않은 ‘때식’이라는 표현은 50여년 간 단절된 채 살아온 남북 간 이질화의 한 단면일 것이다.

짧은 시간이나마 서로를 관찰할 기회를 가진 남북 방문단이 느낀 낯설음과 거부감에서도 이는 드러난다.

북에 다녀온 이산가족들은 “그쪽은 통일에 미쳐 있더라. 붙잡고 통일 얘기만 하려들었다”(김성옥씨), “북한을 자꾸만 선전하는 것만 같고…, 안타까웠다”(김장수씨)고 말했다. 평양취재단의 한 기자도 “일종의 ‘종교국가’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북측 방문단이 바라본 남한사회도 낯설기는 마찬가지. “남한에서 쓰는 조선말에는 외래어가 너무 많고 그러다보니 옷차림까지도 ‘잡탕’이다”(유열씨), “캔에는 비루(맥주)나 적당하지 수정과나 식혜를 담아서야…”(박섭씨)라는 지적들엔 정서적 거부감이 배어 있다.

이처럼 심화된 사회 문화적 이질감은 앞으로 남과 북의 민족공동체적 통합을 방해하는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흥분과 감격 속에서 지낸 3박4일 동안 서로 달라진 언어와 생활상의 큰 차이점을 발견해내기란 쉽지 않았다.‘한 핏줄’이라는 정서적 유대감에 압도돼 다른 것은 눈여겨볼 겨를이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특히 북측 방문단은 대개 지식인 전문가 등 지도층이었고 50년 전 자의든, 타의든 월북한 사람들이 상당수였던 탓에 오히려 서울말과 이남 사투리가 자연스러워 보일 정도였다. 동국대 강성윤(姜聲允·북한학)교수는 “이번에 내려온 사람들은 대표선수 격일 것이고 앞으로는 상비군들이 그 뒤를 이을 것인 만큼 이질감은 더욱 두드러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남과 교류의 확대가 이질감에 대한 거부감을 자연스럽게 상쇄시킬 것으로 보인다. 세종연구원 이종석(李鍾奭)연구위원은 “85년 이산가족 상봉과 달리 이번 8·15 상봉에서 큰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며 “우선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통일을 위한 사회 문화적 조건들이 마련될 수 있다”고 말했다.

15일 코엑스 상봉장에선 이모씨가 북에서 온 형님에게 “북한은 굶주린다면서요”라고 물었다가 오히려 다른 형제들로부터 꾸지람을 듣는 장면이 목격됐다. 서로를 인정해주는 성숙된 의식이 자리잡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전문가들은 이산가족 상봉의 기회를 더욱 늘리면서 경제분야는 물론 영화 문학 예술 체육 등 다양한 문화교류, 나아가 미디어 및 전파의 교류를 통해 남북간 이질화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성윤교수는 “상호주의에 얽매이기보다 우리라도 먼저 북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철희기자>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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