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 합의 5개항 내용]1천만 이산가족 '恨'풀리나

  • 입력 2000년 6월 14일 23시 47분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은 ‘만남’만으로도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해온 정상회담에서 5대선언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냈다. 통일문제의 자주적 해결과 8·15에 즈음한 이산가족 친척방문단 교환, 경협을 통한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 당국간 대화의 조속한 개최 등이 그것이다. 남북은 이제 성실과 신의에 입각해 이들 합의사항을 실천해 나가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 5대선언을 구체적으로 짚어본다.》

▼통일 자주적 해결▼

남북공동선언 합의문은 첫번째 과제로 통일문제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 특히 합의서 제1항의 남과 북이 통일문제를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하자는 것은 통일문제가 남북공동의 노력을 통해서 만이 해결될 사안임을 강조한 것이다. 남북 정상간에 통일문제가 집중 거론된 것은 앞으로 남북 모두에 통일논의에 대한 현실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물론 정부는 그동안 북측이 강조해온 ‘자주적 통일문제’가 주한미군 철수문제를 겨냥한 것이라는 판단에서 꺼려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한미일 3국간의 협의가 북한에도 유리하고 우리에게도 좋은 ‘윈-윈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듯이 자주적 통일문제는 오히려 남북이 통일 과정에서의 걸림돌을 직접적으로, 적극적으로 제거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남북은 이미 실무절차합의서(5월18일)를 통해 정상회담의 의제를 “역사적인 7·4남북공동성명에서 천명된 조국통일 3대원칙을 재확인하고 민족의 화해와 단합, 교류와 협력, 평화와 통일을 실현하는 문제”라고 합의했었다. 7·4공동성명의 3원칙은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로 남북한이 최초로 작성한 합의문이기도 하다. 결국 이번 정상회담의 중요한 의미는 남북이 서로 협력을 시작하던 과거 모습을 찾아 함께 노력하자는 뜻을 담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정부가 자주의 원칙을 꺼려온 이유는 북한이 그동안 이 문제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대남적화노선인 통일전선전략을 강조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이 남북간 신뢰회복의 계기로 작용하게 됐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북측의 의사를 어느정도 존중해준다는 배려의 의미도 띠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영식기자>spear@donga.com

▼연합-연방제 공통성 인정▼

남북이 통일을 지향하기로 원칙적으로 합의한 것은 55년 분단사에 커다란 획을 그은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두 정상은 남북공동선언을 통해 “남측이 주장하는 연합제 안과 북측이 주장하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며 접점(接點)을 찾았다. 남측이 주장해온 ‘국가연합-연방국가-통일국가’의 3단계 통일방안의 첫 단계인 국가연합과 북한이 주장해온 ‘고려연방제’의 초기단계가 비슷한 형태를 띠고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국가연합 형태는 남북이 서로의 국가성을 인정하면서도 한 공동체로의 통합을 준비하는 단계. 이는 국방 외교권을 연방정부가 갖는 연방제 국가와는 다르다. 따라서 이날 합의는 일단 국가연합을 목표로 ‘한반도 통일의 대장정’을 시작하자는 데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두 정상의 합의는 아직도 먼 길로만 느껴졌던 통일 문제를 남북공동선언에 담음으로써 남북이 나아갈 좌표를 설정했다는 점에서 기념비적이란 평가를 받을 만하다.

이번 선언은 후속회담에서 △상대체제 인정 △내정 불간섭 △상호 비방 중상 및 파괴 전복행위 중지 △판문점 연락사무소 설치 등과 같은 정치적 화해 조치를 수반할 가능성이 높다. 논의의 진전에 따라서는 상주대표부 교환 설치와 같은 실무기구 구성 등도 협의할 가능성이 있다. 남북 불가침, 평화체제 구축 및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 제거 등 ‘지뢰’가 산적한 상황에서 통일방안까지 논의한 것은 다소 성급하지 않느냐는 지적도 있다.

그럼에도 “남북정상이 통일에 한 목소리를 내게 된 것은 남북통일이라는 대명제를 ‘이상(理想)의 차원’에서 ‘현실의 차원’으로 끌어내렸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게 통일부 관계자의 평가다.

<박제균기자>phark@donga.com

▼8·15 이산가족 상봉▼

남북정상회담에서 1000만 이산가족 문제 해결의 일대 전기가 마련됐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4대 합의 사항의 하나로 이산가족 문제 해결의 원칙을 못박았기 때문이다.

이번 합의의 의미는 매우 커 보인다.

무엇보다 이산가족 상봉에 소극적이었던 북측의 최고지도자인 김위원장이 전향적인 자세를 보였다는 점이다. 김위원장은 14일 2차 단독정상회담 벽두부터 “남측 TV를 통해 실향민들의 눈물을 잘 봤다”며 지대한 관심을 나타냈다. 합의문 자체도 상당히 구체적이다. 오는 8·15에 가족, 친척방문단을 교환하며 비전향장기수 문제를 해결하는 등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풀어 나가기로 명시한 것.

이런 두가지 사실은 향후 이산가족 상봉 사업이 상당한 수준과 속도로 해결될 수 있음을 기대하게 하는 대목이다.

사실 김위원장의 이런 전향적 자세는 예고된 측면이 있다. 이미 정상회담을 위한 1∼5차 준비접촉에서 북측이 문제 해결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태도를 보였기 때문.

두 정상간의 합의에 따라 남북 당국은 본격적으로 ‘지속적이고 단계적인 상봉사업’ 추진에 나설 전망이다. 일단 이벤트성으로 방문단을 교환하지만 점차 △이산가족의 생사 확인 △우편물 교환소 설치 교환 △왕래와 상봉 △자유 의사에 의한 재결합의 순서를 밟아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8·15 방문단 성사 이후 협의에 들어갈 구체적인 사업은 아무래도 남측이 그동안 끈질기게 요구해온 것들을 남북이 보다 전향적인 자세로 다시 검토하는 선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정부는 △월 100명씩 상봉 △월 1회 쌍방 300명씩 생사 및 주소 확인을 위한 명단 교환 △월2회 우편물 교환 △판문점 상봉면회소 설치 △쌍방 100명씩 고령 이산가족의 서울∼평양 방문단 순차 교환 등을 요구했었다.

하지만 걸림돌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보기는 힘들다. 이산가족 문제가 남측에는 ‘인도적 문제’지만 북측으로선 체제 문제까지 얽혀 있는 ‘정치적 사안’이기 때문이다. 남북이 71년 남북적십자회담을 시작으로 99년 남북차관급회담까지 28년간 이산가족 문제를 협의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보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문철기자>fullmoon@donga.com

▼경제협럭 확대▼

남북 정상이 경제협력을 통한 민족 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사회 문화 체육 보건 환경 등 제반 분야의 교류 협력에 합의한 것은 그동안 민간 차원에서만 추진돼 온 이 분야의 교류 협력을 정부간 대화 차원으로 끌어올렸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

지금까지 북한은 금강산관광 경협 스포츠 문화 교류 등을 추진하면서 남한 정부를 배제한 채 민간 인사들과의 접촉만을 한사코 고집해 왔다. 하지만 이번 합의가 이뤄짐으로써 92년 남북기본합의서상에 합의된 바 있는 경제공동위와 사회문화교류협력 공동위 등 실질적인 정부간 대화 채널의 가동이 가시화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특히 남북기본합의서에도 명시된 바 있는 ‘민족 경제의 균형적 발전’이라는 개념을 부활시킴으로써 어느 한측의 상대방에 대한 일방적 지원을 부인하고 공존공영을 꾀하며 장기적으로는 통일 비용의 남북 분담의 원칙까지도 적용시킬 수 있는 개념으로 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우선 경제 분야에 있어 남북은 대북 투자를 위한 법적 제도적 걸림돌들, 예를 들어 이중과세방지 협정이나 투자보장협정의 체결과 같은 문제들을 집중적으로 협의할 것으로 보인다.

문화 분야에 있어서는 △연극 음악 무용 분야에서의 남북합동 공연 △극작가 배우 연출가 간의 공동 세미나 △남북 문학작품집의 공동 출간 △남북 문화재 교류 등 다양한 상호 교류문제가 논의될 수 있다.

올 가을 열리는 시드니 올림픽의 남북한 동시 입장, 오사카 세계탁구선수권대회의 단일팀 구성, 2002년 부산 아시아경기의 북측 참여, 2002년 월드컵 분산 개최 문제 등은 남북 체육교류를 위해 협의가 가능한 대목이다.

<윤영찬기자>yyc11@donga.com

▼당국간 대화 개최▼

5대 선언중 당국간 대화의 조속한 개최는 합의사항의 실천을 담보하는 수단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평양 정상회담이 화해와 협력의 큰 길을 닦았다면 이제 이 길을 통해서 이뤄질 구체적인 사안들은 당국간 대화, 곧 후속회담에서 논의, 결정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선 시급한 것은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이다. 이 문제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가장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대목으로 답방이 성사되려면 당국간 대화가 열려 구체적인 절차와 방법이 충분히 논의되어야 한다.

정부 관계자들은 답방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한 관계자는 “김위원장이 지난달 중국을 방문해 해외 순방의 물꼬를 튼 데다 미국도 부분적인 경제제재 해제조치를 준비하고 있다”며 “주변 4강들이 북한의 개방을 적극 유도하고 있는 만큼 답방 성사 가능성은 높다”고 전망했다. 당국간 대화는 또한 92년 남북이 체결한 남북기본합의서의 실천을 다시 추진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기본합의서는 △화해협력 공동위 △경제교류협력 공동위 △군사공동위의 구성과 가동을 명시하고 있다. 경협이나 이산가족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이같은 공동위가 재구성 가동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들은 당국간 대화가 조기에 개최돼 본격적으로 합의사항을 논의하게 되면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면회소설치 △남북 연락사무소 설치 △사회간접자본 지원 △남북정상간 핫라인 설치 등과 같은 현안들도 ‘제도화된 틀’안에서 논의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따라서 어떤 면에서 5대 원칙 합의 중 가장 의미있는 합의는 대화 재개에 관한 합의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윤영찬기자>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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