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시민 60만명 "만세" 연호하며 정상회담 환영

  • 입력 2000년 6월 13일 16시 05분


남북정상들을 맞는 평양의 표정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평양시민들은 "만세" 등을 연호했다. 평양시민 60만명이 길가와 언덕 등에서 환영의 물결을 이뤘다.

0…10시50분 순안공항을 떠난 차량행렬은 20분만인 11시10분께 평양시 입구인 연못동에 도착해 잠시 정차했다. 김대통령과 김위원장은 이곳에서 잠시 차에서 내려 환영나온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며 답례를 했으며 악수를 나누기도 했다. 평양시 입구부터는 수많은 평양시민들이 나와 일행을 환영했다. 이들은 연도에 줄줄이 서서 진홍색과 분홍색 조화(꽃술)들을 흔들었다. 시민들은 조화를 열렬히 흔들며 "만세""김정일 결사 옹위"을 외쳤다.

0…환영인파는 약 60만명. 평양시민이 총 220만명임을 감안할때 성인들의 대부분이 나온 것으로 봐야 한다고 안내원이 귀띔해 주기도 했다.

한 안내원은 "평양시민들이 대부분 나온 것으로 봐야한다" "남측의 대통령을 열렬히 환영하기 위한 자발적인 인파"라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안내원은 "어제 김대통령이 오는 것을 알고 공(허탕)을 쳤다"고 말해 전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나왔다가 되돌아 간 일도 있다고 밝혔다.

다른 안내원들은 "위대하신 장군님이 여러분들을 따뜻하게 환영하기 위해 조치를 취했다. 소감이 어떠냐" "남측 통일사절들이 그런 기대에 보답하지 않으면 정말 안된다" 라고 말했다.

0…연도의 시민들은 남자들의 경우 양복을 입거나 셔츠에 넥타이를 맨 차림이었으며, 여자들은 대개 한복을 입고 있었다. 흰색 저고리와 검정색 치마를 입은 학생들의 모습도 눈에 많이 띄었다.

시민들은 조화를 위아래로 흔들면서 주로 "만세 만세" "김정일 김정일 결사옹위 결사옹위"라는 두가지 구호를 일사불란하게 끊임없이 외쳤다.

0…차량행렬은 연못동에서 4·25 문화회관까지의 '용거리', 전승기념관까지의 '비파거리', 보통강 강안도로, 보통문, 만수대의사당, 옥류교, 만수대 언덕, 개선문 거리, 종로거리, 김일성 종합대학까지 평양의 주요거리를 10여 킬로미터정도 순회했는데 환영인파가 단 한 곳도 빠짐없이 연도를 메웠다.

차량행렬은 시속 평균 30킬로미터 정도로 달렸는데 연도의 환영인파가 꽃을 흔들며 함성을 지르는 장면은 11시 40분까지 무려 30분 동안이나 이어졌다. 연도 중간중간에는 학생들로 구성된 악대가 나와 행진곡 등을 연주하며 분위기를 돋구었다.

0…환영인파로 나온 시민들의 표정은 대체로 밝은 편이었으며, 행렬이 지나갈 때는 더욱 큰소리로 함성을 쳤다. 일부 시민들은 차도로 몸을 들이밀면서 반가움을 표시했다. 공식 차량행렬이 끝나고 기자들이 탄 차량은 백화원영빈관(백화원초대소에서 이렇게 명칭이 바뀌었다고 함)으로 향한 본대와 분리돼 기자들의 숙소인 고려호텔로 향했는데, 집이나 직장으로 되돌아가는 평양시민들은 처음과 마찬가지로 반가운 표정으로 꽃이나 손을 흔들었다. 그러나 구호를 외치지는 않았다.

[평양=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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