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돌아본 6대 쟁점]변수많아 혼전…혼탁

  • 입력 2000년 4월 13일 19시 42분


《‘새 천년’ 첫 선거인 16대 총선은 시민단체의 낙천 낙선운동과 후보 신상공개라는 새로운 실험과 함께 지역대결구도와 불법탈법 선거운동 등 구태(舊態)가 혼재한 선거였다. 이에 따라 선거전도 역대 어느 선거때보다 다양한 양상이 나타났다. 12일 막을 내린 16일간의 공식 선거운동기간을 포함해 지난 3개월간의 숨가빴던 선거전을 주요 쟁점별로 정리해 본다.》

▼낙천-낙선운동▼

이번 총선에서는 시민단체의 활약이 대단했다. 연초에 시작된 시민단체의 낙천 낙선운동은 선거판을 수시로 뒤흔들었다.

첫 포성은 1월10일 공천부적격인사 166명의 명단을 발표하며 정치권과의 일전을 선언한 경실련이 울렸다. 정치권은 당연히 반발했다. 국민의 대표를 선출하는 권한은 오직 유권자가 갖고 있는데 시민단체가 이에 대해 ‘감 놔라, 대추 놔라’ 할 수 있느냐는 논리였다.

중앙선관위도 법정 선거기간 시작 전에 특정 후보의 당락을 위해 움직이는 것은 불법이라고 제동을 걸었다.

그러나 대다수의 국민은 시민단체에 지지를 보냈다. 물론 정치권에 대한 깊은 불신 때문이었다. 1월24일 총선시민연대는 공중파 방송이 생중계하는 가운데 66명의 1차 공천반대자 명단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자민련 김종필(金鍾泌)명예총재의 이름도 들어 있어 자민련은 여권과 시민단체의 ‘음모론’을 제기하며 반발했다.

총선연대는 이어 투표일을 열흘 앞둔 4월3일 낙선운동대상자 86명을 발표했다. 총선연대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 중 22명을 집중 낙선운동 대상으로 분류하고 해당 선거구를 돌며 낙선운동을 벌여 후보 운동원들과 여러 차례 충돌을 빚기도 했다.

▼후보 신상공개▼

선거법 개정으로 후보 등록 때 모든 후보의 납세실적과 병역내용이 공개돼 선거전 초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각 정당과 후보들은 다른 현안은 제쳐놓고 저마다 상대방의 납세와 병역문제 들추기에 주력해 서로 물고 물리는 이전투구(泥田鬪狗)가 계속됐다. 이러다 보니 후보 등록 전까지만 해도 당선을 자신하던 일부 유력 후보가 납세 또는 병역 공방에 시달리며 당선권에서 멀어지는 현상이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반면 이에 따른 반사 이익으로 2, 3위에 머물다 얼떨결에 1위로 급부상하는 해프닝도 없지 않았다.

후보 전체의 도덕성 문제도 도마 위에 올랐다. 전체 후보 중 약 13%가 소득세와 재산세를 한푼도 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고 후보 직계 가족의 약 25%가 병역을 면제받은 것으로 밝혀져 선량(選良) 후보로서의 자질을 의심케 한 것.

선거전 종반에는 선관위가 유권자의 알권리를 존중한다는 취지로 모든 후보의 실효(失效)된 전과까지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이번 총선에 출마한 지역구 및 전국구 후보 1178명 중 189명(16.0%)이 전과자이며 이 중 110명이 시국사범이고 나머지 79명이 일반사범인 것으로 나타나 국회의원 후보 자질 시비가 벌어졌다.

▼공천파동▼

이번 총선에서도 각 당의 공천 후유증이 심각하게 나타났다. 각 당이 당초 공언했던 ‘민주적 공천’이 아닌 ‘밀실 공천’이 계속된 탓이었다.

한나라당은 2월18일 지역구 공천자 명단에서 김윤환(金潤煥) 신상우(辛相佑) 김정수(金正秀)의원과 이기택(李基澤)부총재 등을 제외했다. 이에 대해 낙천자들은 이회창(李會昌)총재가 자신과 대립 관계에 있던 중진을 대거 숙청한 것이라고 반발했다.

이들은 이총재를 격렬히 비난한 뒤 당을 떠났다. 조순(趙淳)의원과 김광일(金光一)전대통령비서실장 등도 공천을 반납한 뒤 이들과 행동을 같이 했고 이수성(李壽成) 장기표(張琪杓)씨 등이 가세해 민국당을 창당했다.

민주당은 한나라당보다 하루 전인 2월17일 지역구 공천자를 발표하며 “여러 차례 지역별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투명하고도 과학적으로 공천했다”고 홍보했다. 그러나 3월24일 서울지법남부지원은 전북 군산 공천자인 강현욱(姜賢旭)의원이 공천심사기간 후 민주당에 입당했다는 이유로 공천 효력정지 가처분 결정을 내려 민주당의 이런 주장을 무색케 했다. 결국 민주당도 이를 시인하고 뒤늦게 당규를 개정해 강의원을 재공천하는 촌극을 벌였다.

▼경제정책 공방▼

경제정책에 대한 여야간 공방이 치열했던 점도 이번 선거의 특징중 하나.

한나라당은 선거초반 국가채무와 국부(國富) 해외유출, 빈부격차 등을 현 정권의 대표적인 경제실정 사례로 쟁점화했다. 이를 계기로 한나라당은 지난 2년간의 국정파탄을 준엄하게 심판해야 한다며 ‘여당 견제론’을 적극 주창하고 나섰다. 이 같은 공세가 국민에게 먹혀 들어가면서 한나라당은 ‘공천파동’으로 하락했던 당의 지지도를 단숨에 만회했고 민주당은 궁지에 몰렸다.

민주당은 처음에 한나라당의 주장을 흑색선전으로 몰아치면서 경제공방을 주도한 한나라당 이한구(李漢久)정책위원장에 대한 흠집내기에 열을 올렸으나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에 위기의식을 느낀 민주당은 한나라당이 선거에서 승리하면 주가하락 등 경제불안을 초래한다는 ‘제2위기론’을 집중 호소하는 한편 한나라당의 ‘IMF원죄론’까지 공격함으로써 반격을 시도했다.

이 같은 ‘위기론’으로 민주당 지지도가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고 선거 막판에 남북정상회담 개최 합의 사실이 발표돼 여권 지지표 및 부동표 흡수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됐다는 게 민주당측의 주장이다.

▼지역감정 재연▼

선거 때마다 기승을 부렸던 지역감정 조장발언이 이번에도 예외 없이 재연됐다. 오히려 4당 체제가 되면서 일부 정치인들이 지역감정에 편승해 표를 얻으려고 혈안이 돼 역대 어느 선거 못지않게 질량(質量)면에서 악성(惡性)이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치인들의 지역감정 발언을 촉발시킨 도화선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3·1절 기념사. 김대통령이 이날 “쿠데타 세력이 지역감정을 만들었다”고 발언하자 이에 발끈한 자민련 김종필명예총재는 다음날인 2일 “김대통령이 지역감정을 일으킨 장본인”이라고 되받아쳤다.

뒤이어 한나라당 이회창총재가 “김대통령이 지역감정의 1차 책임자”라고 공격했고 민국당 김광일최고위원은 “김대통령은 지역감정의 괴수”라고 가세했다. 이어 “민국당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영도다리에 빠져 죽자”는 김최고위원의 발언을 계기로 김윤환(金潤煥)최고위원의 ‘영남정권 재창출론’과 자민련 이한동(李漢東)총재의 ‘중부정권 창출론’ 등 지역감정에 편승한 정치적 발언들도 봇물처럼 쏟아졌다.

이 같은 현상은 언론과 시민단체 등의 비판으로 곧바로 수그러드는 양상을 보였으나 영호남 등에서의 지역대결구도는 여전했다. 다만 영호남과 충청권에서 ‘탈지역주의’에 대한 미세한 변화의 조짐이 나타난 것은 긍정적인 측면으로 볼 수 있다.

▼불법-탈법 선거운동▼

이번 선거에서 최초로 시민단체의 낙천 낙선운동과 후보자의 병역 내용, 납세실적, 전과 등 신상공개가 이뤄지면서 이에 편승한 네거티브 캠페인이 전례 없이 기승을 부렸다. 이에 따라 비방유인물과 악성소문을 퍼뜨리는 구전(口傳)홍보가 선거기간 내내 곳곳에서 끊이지 않았다.

실제로 선관위가 선거운동 종료일인 12일까지 적발한 선거법 위반행위는 모두 2834건. 이는 15대 총선 때 741건의 4배에 이르는 것.으로 수치상으로만 보면 4년 동안 선거문화가 퇴행(退行)한 셈이다.

정당별로 보면 민주당이 837건으로 가장 많았고 한나라당 512건, 자민련 344건, 민국당 100건, 한국신당 16건, 민주노동당 13건, 청년진보당 3건 등이었으며 무소속 후보자의 경우도 294건에 달했다. 위반행위도 금품 및 음식물 제공 534건, 비방과 흑색선전 77건 선거관리방해 55건 등 ‘질이 나쁜’ 경우가 많아 혼탁 과열 선거였음을 보여주었다. 한편 여야간 금권 및 관권선거 공방도 치열했다. 한나라당은 민주당이 ‘3·15 부정선거’에 버금가는 금권 및 관권선거를 획책하고 있다고 비난했고 민주당은 한나라당이 오히려 금권 및 역관권선거를 하고 있다며 역공을 취해 막판까지 일진일퇴의 공방이 이어졌다.

<양기대·송인수·공종식기자>k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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