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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1월 13일 19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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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귀순해 최근 TV를 통해 공개된 북한 여배우 김혜영씨(24)는 요즘 열심히 서울 말씨를 익히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북한식 억양이 수시로 튀어나와 발음교정 전문가로부터 별도의 과외수업도 받고 있다.
얼마전 방송국의 촬영현장을 방문, 관계자들로부터 “앞으로 같이 일해보자”는 반응을 얻어냈다. 그래서 TV드라마와 영화들을 보며 남한 연예계 데뷔를 ‘탐색’하고 있다.
키 1백63㎝에 몸무게 40㎏을 조금 넘는 가냘픈 몸매로 청순하고 이지적인 ‘토종 조선여인’의 용모. 북에 있을 때만 해도 꽤나 통통했지만 탈북 이후 1년여간의 마음고생 탓에 살이 많이 빠졌다.
김씨가 가족 5명과 함께 국경을 넘어 중국땅을 밟은 것은 지난해 1월15일. 꽁꽁 얼어붙은 강 바닥을 뒤도 한번 돌아보지 않고 단숨에 내달렸다. 그날 살을 파고들던 칼바람에 비하면 지금 서울의 강추위는 그저 따뜻한 봄 날씨다. 아버지는 사전에 아무 얘기도 없이 “중국에 있는 고모를 보고 오자”고만 했을 뿐이었다.
다시는 북에 돌아가지 않는다는 말에 처음에는 울면서 “돌아가자”고 보챘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간 ‘성분불량자’라는 이유로 이루고자 했던 많은 꿈들을 접어야 했던 어두운 기억들 때문.
어릴 적부터 성악에 남다른 자질을 보였던 김씨는 유치원에서 대학 1년때까지 다섯번이나 ‘기쁨조’의 보천보전자악단에 들어갈 기회를 가졌으나 최종심사에서 번번이 탈락했다. 보천보전자악단은 북한 연예계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는 선망의 자리.
1천대 1이 넘는 경쟁을 뚫고 선발돼 예비훈련까지 마쳤지만 최종 신원조회에서 아버지가 중국 태생이고 친척들이 그곳에 살고 있다는 이유로 눈물을 삼켜야 했다. 93년에는 북한이 최대명절로 치는 김일성의 생일축전에 종합소개자(사회자)로 발탁되기 직전까지 갔으나 이마저 좌절됐다.
평양연극영화대를 졸업한 김씨는 재학시절 단편영화 ‘여의사’ ‘다시 돌아온 초소장’ ‘산울림’에서 주연을 맡았고 TV연속소설 ‘대학 입학하던 날’에도 출연했다.
“얼마전 ‘고스트 맘마’를 봤는데 최진실씨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박상원 한석규씨도 좋아하는데 박씨는 진지하고 솔직해서 그리고 한씨는 부드러우면서도 독특한 화술이 좋아요.”
‘끼있는 여자’들은 남이나 북이나 모두 솔직하고 발랄해서 더욱 아름다웠다.
〈이철희기자〉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