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529호실 파문]변호사 4인이 본 시각

  • 입력 1999년 1월 3일 19시 18분


《‘국회 529호실 사건’의 본질은 무엇인가. 여야가 이 사건의 본질을 놓고 전혀 상반된 주장으로 맞서 있는 가운데 변호사 4명에게 법률적으로 이 사건을 어떻게 볼 수 있는지 들어봤다.》

▽정주식(鄭宙植)〓독이 있는 나무에서는 독이 있는 열매가 나올 뿐이라는 ‘독수(毒樹)의 독과(毒果)’이론은 증거법상의 대원칙이다. 수사와 재판에서도 불법하게 수집된 증거는 증거능력을 부인하지 않는가. 한나라당 의원들은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으로서 이같은 법의 대원칙을 어겼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국회 사무실에 침입한 것은 그 자체로서 비난받아야 한다. 침입의 목적은 그 다음 문제다. 목적이 정당하다고 해서 불법적인 수단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정치사찰 폭로라는 목적이 정당하다면 정당한 방법과 절차에 따라 했어야 했다. 한나라당은 판문점 총격요청사건에서 고문의혹을 제기하면서 그 사건에서 나온 모든 증거와 진술은 불법하게 수집되거나 이뤄진 것이므로 증거능력이 없다고 주장해왔다. 한나라당의 행위는 자가당착이다.

▽임영화(林榮和)〓한나라당이 529호실 내 자료의 시시비비를 적법하게 가리지 않고 강제로 문을 뜯고 들어간 것은 실정법상 문제가 있다. 한나라당은 안기부의 정치사찰을 막기 위한 공익적 목적으로 이번 일을 벌였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여야합의하에 설치운영돼 온 국회정보위 자료실에 대한 불법침입과 문서탈취라는 실정법 위반에 따른 처벌을 면키 어렵다. 안기부 직원들이 수집한 정보의 질이 문제인데 그 정보의 성격이 사찰의 결과인지 아닌지는 아직 판단하기 어렵다. 다만 한나라당측으로서는그같은안기부직원들의 정보수집 행위가 일상적인 정보활동을 넘어서는 정치인사정을 위한 자료수집 행위라는 사실을 입증하지 못할 경우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될 것으로 보인다.

▽김시현(金時賢)〓한나라당이 529호실에서 가져간 문서에 대한 조작논란이 없는 것으로 봐서 안기부의 문건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국가기관의 정보를 여당의 이익을 위해 사용해서는 안되지만 여당이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 욕망을 억제하기는 어렵다. 국회 정보위 사무실은 원래 국회정보위 전문위원이 방의 책임자지만 안기부가 명패를 붙이지 않은 채 편법으로 입주해 있던 곳이다. 따라서 여당의 정보기관 침입논리는 무리가 있다. 법에서도 상업비밀과 특허에 차이를 두고 있다. 상업비밀의 경우 내용을 공개하지 않는 대신 법으로 보호받지 못하지만 특허는 내용이 모두 공개되는 대신 법에 의해 보호받는다. 안기부가 공개적으로 간판을 내걸고 입주했다면 보호받지만 이번 경우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보호받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최인호(崔仁虎)〓한나라당의 행동은 명백한 실정법 위반이지만 이를 비난하는 국민회의도 큰 소리칠 처지가 아니다. 어느 범위까지를 정치사찰로 규정할 것인지가 문제이지만 안기부의 정치사찰은 있어서는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정부가 안기부의 정치사찰 논란에 대해 미온적이고 미봉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정부의 위상을 실추시키는 행동이다. 정부와 국회는 529호실의 성격이 정보위의 기밀자료 열람실인지 안기부의 국회사찰 분실인지 명백히 밝히고 문제가 있다면 폐지해야 한다. 한나라당이 국회사무실 문을 뜯고 들어가 문건을 가져가 공개한 것은 실정법을 위배한 것으로 원칙적으로 절차적 민주주의에 반한다.〈법조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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