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중위 메모]사병들 실탄은닉-탄약매매-총기장난

  • 입력 1998년 12월 12일 08시 07분


김훈중위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근무 당시 작성한 39쪽의 메모 노트엔 병사들이 금기시해야할 북한군 접촉은 물론 총기 분실, 탄약 은닉, 총기 장난, 명령 불복종 등 부대안의 문제점들이 소상히 적혀 있다.

육사를 졸업한 지 3년밖에 안되는 ‘원칙장교’ 김중위가 지켜본 JSA 경비대대 2소대 대원들의 신상기록과 성격, 가정환경에서 부터 단체생활 양태 군기 등이 빼곡이 기록되어 있다. 더러 부대원들에 대한 그의 세심한 배려와 따스한 마음도 배어 있다.

다음은 김중위의 노트에 나타난 경비소대의 모든 것.

▼ 무기관리 허술 ▼

김중위는 부대원들의 허술한 총기 및 탄약 관리실태를 보고 놀랐던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일부 부대원들이 탄약을 팔아먹은 사실을 뒤늦게 알고 분노한 흔적도 있다.

노트에는 ‘실탄 은닉’ ‘실탄 유기’ 등의 기록이 자주 보인다. 또 ‘실탄이나 공포탄이 막사에 있으면 안된다’며 교육했던 흔적도 눈에 띈다. 그래도 부대원들의 실탄은닉은 그치지 않았던 것 같다. 메모 23쪽을 보면 ‘앞으로 실탄을 은닉한 자는 세이크다운(박살내겠다는 뜻인 듯)하겠다’고 적었다. 또 막사안의 탄알 은닉을 방지하기 위해 자주 서랍을 확인해야 하겠다는 나름대로의 방침도 적었다.

또 메모 25쪽에는 ‘총기 장난 MP(헌병)체포’라고 적혀 있어 부대원들이 자칫 잘못하면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총기를 갖고 위험한 장난을 했음을엿볼 수 있다.

메모에는 총기분실이나 심지어 소대원인 ‘김○○이 탄약을 팔아먹었다’는 내용도 보인다. 탄피 하나가 없어 밤새 전 소대원이 탄피를 찾아야 하는 한국군 부대에서 생활했던 김중위에게 JSA 부대안의 행태는 실로 충격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 군기 문란 ▼

부대내 기강과 문제점도 소상히 적어 놓고 있다.

37쪽에는 ‘순찰시 (북한군과) 사진촬영 해서는 안된다’ ‘신상필벌’이라고 방침 등을 써놓고 ‘한국군 단순일과, JSA경비중대 업무많고 특별한 규정이 없다’는 등의 의견도 붙였다.

24쪽에서 26쪽에 이르는 부분은 김중위가 JSA병사들을 교육할 때 주지시키려 했던 내용을 일련번호를 매겨 기록한 듯한 내용. 군기문란 관련 얘기가 되풀이된다.

‘오전 (실탄)불출 오후 반납’ ‘구타’ ‘사고시 바로바로 보고 은폐하면 안된다’ ‘음주시 반드시 보고, 전역병이 모범돼야’ ‘총기분실’ ‘탄 은닉 및 유기사건’ ‘비상훈련 자주’….

▼ 부대통제 ▼

김중위는 부하의 사소한 근무태만에 대해서도 군법상의 원칙을 강조했다.

한미연합사의 지휘 아래 외국 군인과 자주 접촉할 수밖에 없는 공동경비구역의 근무특성상 한국 군인의 사소한 잘못이 곧장 국가 이미지로 연결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웃 4소대원이 포르노잡지를 미군으로부터 훔친 사실을 적어 놓았고 기록 옆에 ‘한국 이미지’‘한국 자존심’ 등을 적어 자신의 소대에서 유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거듭 주의를 주었던 것 같다.

실제로 김상병이 근무중 소설을 읽자 보름간 영창을 보낸 뒤 한국군에 원대복귀 시키기도 했다. 또 김(계급 안나옴)이 술을 먹은 데 대해 동그라미를 표시해 주의를 상기시켰고 한 소대원은 운전중 접촉사고를 냈다고 기록했다.

이처럼 해이해진 기강을 확립하기 위해 그는 두발 및 수염깎는 상태까지를 지속적으로 체크했고 견장과 버클 등을 바르게 착용할 것을 소대원에게 주지시키기도 했다.

▼ 부대원 신상파악 ▼

김중위는 소대 장악을 위해 나름대로의 관찰과 소견을 섬세하게 적어놓고 있다. ‘병장 김섭 착하고 일 잘함. 가까이 어렵다. 생존경쟁…’ ‘병장 박 순진(밑줄) 소극적 성격. 후임병에게 영향력 약함’.

또 ‘병장 김 합리적. 많이 알고 후임병에 잔소리 많음. 개인주의’ ‘상병 박 인간적 마음 여리다. 후임병하고 관계 좋다’ ‘상병 박 덜렁거림. 마음 여리고. 일 시킬 때는 강도를 구체적으로 체크’ ‘상병 유머 감각과 사교성. 꼼꼼 후임병에게 영향력 큼’.

〈윤상호·선대인·이헌진기자〉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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