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예결위]野, 예산안협상 「갈짓자걸음」

  • 입력 1998년 12월 8일 19시 39분


새해 예산안 처리를 위한 정기국회가 개회중인 8일 오후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와 의원들은 서울 명동과 강남고속터미널 신촌 등에서 제2건국위 관련 홍보물을 배포하고 있었다.

제2건국위와 이 단체에 배정된 예산의 ‘불법성’을 시민들에게 홍보하기 위해서라는 설명이었다.

국회는 법정 시한인 2일을 훨씬 넘겨 이날까지도 새해예산안 처리를 완전히 매듭짓지 못했다. 예결위 계수조정소위에서 예결위 전체회의를 거쳐 본회의까지 가는 길목마다 여러곳에서 발목이 잡히고 있다. 84조9천여억원의 예산 중 20억원에 불과한 제2건국위 예산을 둘러싼 여야의 공방 때문이었다.

여당은 그동안 “제2건국위 예산 20억원을 항목 그대로 관철시키겠다”며 비교적 일관된 입장을 취해왔다.

다만 정국을 원만하게 풀어가야 할 여당으로서 ‘대통령의 뜻’만을 내세워 야당이 넌지시 제시해온 ‘대통령 자문기구 예산’과 같은 ‘우회적 방법’을 아예 무시해온 것이 과연 바람직했느냐는 지적도 없지는 않다.

반면 야당인 한나라당은 제2건국위 예산과 관련해 시종 비판적인 시각을 보여왔지만 전체 예산안 처리와 연계하는 과정에서 중심없는 ‘갈지자걸음’을 해왔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한나라당은 법정시한을 하루넘긴 3일 오전만 해도 제2건국위 예산에 그리 집착하지 않아 이날 예산안 처리 가능성이 점쳐졌다.

하지만 이날 저녁 예산안과 ‘총풍(銃風)’사건에 관련된 이총재의 신변안전문제가 연계돼있다는 ‘빅딜설’이 돌출하면서 한나라당은 ‘제2건국위 예산은 절대 안된다. 예산안심의에 응할 수 없다’는 강경입장으로 돌아섰다.

그러나 이총재는 주말을 거치면서 더 이상 예산안 처리를 끌지 않기로 마음먹고 7일 오전 총재단회의에 임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같은 ‘표결처리 수용’의사는 물밑채널을 통해 여권에도 전달됐다.

하지만 이날 회의에서 대부분의 부총재들이 “제2건국위는 정권의 홍위병으로 큰 불씨가 될 것”이라고 강력히 반대하자 이총재는 주춤했다.

이어 이총재는 이날 오후 의원총회에서 또한번 의견수렴에 나섰으나 “20억원이 통과되면 총재가 사퇴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되는 등 강경론이 득세하는 바람에 이총재의 뜻은 좌절됐다.

이 와중에서 이총재는 이날 예산안을 예결위 계수조정소위에서 통과시키는 데만 동의했다. 하지만 예결위 전체회의에서의 찬반표결은 막는 어정쩡한 태도를 취했다. 예결위 계수조정소위와 전체회의는 사실상 ‘한묶음’이라는 오랜 국회의 관행을 무시한 것이다.

이날 뿐이 아니었다. 한나라당은 8일에도 예결위 전체회의에서 찬반투표를 거부하고 전원 퇴장하는 방식으로 예산안의 통과를 묵인했지만 이날중 본회의 처리는 안된다고 발목을 잡았다.

이는 당내 강경파의원들이 이총재를 강하게 압박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이날 일부 의원은 이총재를 직접 만나거나 전화를 통해 “육탄저지를 해서라도 예산안 통과를 막아야 한다”고 ‘강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도 이총재는 9일 오후 본회의를 열어 예결위 전체회의때와 같은 방식으로 예산안을 처리하는데 동의한 것으로 알려져 또한번 오락가락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총재는 그동안 강경파들에 둘러싸여 그들의 뜻을 따르지도, 그렇다고 소신대로 의원들을 설득하지도 못한 것이다.

〈문 철·김정훈기자〉full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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