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장 선출]한나라 「반란가담자」 최소 10명

  • 입력 1998년 8월 3일 19시 24분


낙선한 오세응의원
낙선한 오세응의원
한나라당의 이탈표가 국회의장 경선의 승부를 갈랐다.

3일 경선에 참여한 의원은 2백99명의 재적의원 중 한나라당 최형우(崔炯佑) 노승우(盧承禹), 자민련 김복동(金復東), 무소속 강경식(姜慶植)의원을 제외한 2백95명.

한나라당 1백49명, 국민회의 88명, 자민련 48명, 국민신당 8명, 무소속 2명이었다.

따라서 한나라당의 이론상 ‘기본표’는 소속의원 1백49명과 오세응(吳世應)후보지지의사를 표명한 무소속 홍사덕(洪思德)의원을 합한 1백50표.

그러나 1차투표에서 오후보는 1백37표를 얻는 데 그쳤다. 최소한 13표의 ‘반란표’가 생긴 셈이다. 흥분한 한 당직자는 “(여당에서) 끌어온 표를 감안하면 20명정도가 이탈했다. 배신감을 느낀다”고 말했지만 1차투표에서 여권의 이탈표는 거의 없었다는 게 일반적 분석이었다.

반면 자민련 박준규(朴浚圭)후보가 얻은 1백47표는 국민회의와 자민련의원 전원(1백36명)이 지지표를 던졌다고 가정하더라도 외부에서 11표를 끌어오는데 성공한 결과다.

이는 국민신당의 8표와 무소속 정몽준(鄭夢準)의원 표에다 한나라당을 이탈한 2표가 더해진 것이라는 게 여권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그러나 2차투표에서 박후보는 1표 줄어든 1백46표, 오후보는 4표가 늘어난 1백41표를 얻었다.

한나라당측은 이를 두고 “집나간 ‘검은 양’ 4마리가 돌아왔다”고 반겼다. 하지만 한나라당측 주장대로 4명이 돌아왔다 하더라도 여전히 9명은 당의 품을 떠나있는 셈이었다.

이와 관련해 이재오(李在五)의원은 “기권 6표, 무효 2표 모두 우리당에서 던진 표일 것”이라며 “박후보를 찍은 사람은 단 한사람 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결선투표에서 두 후보간 표차는 더욱 벌어졌다. 박후보는 1,2차 투표 당선하한선이었던 1백50표에서 불과 1표 모자라는 1백49표를, 오후보는 1백39표를 얻었다. 결국 한나라당의원 중 최소 10명이 ‘반란’에 가담한 셈이다.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는 “당내 ‘반란표’가 너무 많았다”고 한탄했다.

〈문철기자〉full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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