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정국/청와대 표정]『수사 불가피』서 반보씩 후퇴

  • 입력 1997년 10월 15일 20시 30분


김대중(金大中)국민회의총재의 비자금 파문에 대한 입장이 시간이 갈수록 신중해지는 느낌이다. 이같은 기류는 검찰수사에 대한 청와대 핵심관계자들의 발언수위가 「반보 후퇴」를 거듭하고 있는 데서도 역력히 드러난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들의 얘기는 『신한국당이 고발하면 검찰수사는 불가피할 것』(11일)→『수사에 착수할 것인지는 축재혐의가 드러나는지의 여부에 따라 결정될 것』(14일)→『고발만으로 수사하는 것이 아니라 범죄혐의를 입증할 증거자료가 수반돼야 한다』(15일)는 식으로 변해간다. 특히 한 고위관계자는 15일 『신한국당이 지금까지 제시한 친인척계좌 등의 자료만으로는 수사착수가 곤란하다』며 신한국당쪽에 적극적인 「거증(擧證)책임」이 있음을 시사한 뒤 『검찰의 수사착수는 범죄혐의가 뚜렷해 기소에 자신이 섰을 때만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청와대쪽의 입장은 신한국당이 제기한 의혹의 「흑백 가리기」를 위한 검찰수사는 있을 수 없다는 원칙론으로 요약된다. 또 이는 검찰이 현재 보이고 있는 신중한 자세와도 무관치 않다는 게 관계자들의 얘기다. 검찰이 범죄입증의 「확신」없이 수사에 나서게 될 경우 여야 정쟁(政爭)에 말려들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청와대의 입장에는 또 김총재의 비자금과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의 92년 대선자금은 성격이 다르다는 「차별화 논리」도 깔려 있다. 『단순히 정치자금을 받아 썼다는 이유로 대선자금이나 정치자금 일반을 수사할 수는 없으며 축재성격이 있느냐가 문제』라는 한 관계자의 얘기도 같은 맥락이다. 또 다른 한 핵심관계자는 『사안의 성격상 가능하면 정치의 장(場)에서 해결되는 게 바람직하지 않겠느냐』는 견해를 제시했다. 홍사덕(洪思德)정무제1장관이 15일 열린 공선협세미나에서 『비자금사태는 수사기관에 맡기기보다는 국민에게 맡겨야 한다』며 폭로종결과 정책대결을 제안하고나선 것도관심을 끄는 대목이다. 홍장관 얘기의 배경에는 검찰수사가 시작될 경우 정치권 전반이 예상하기 어려운 혼란에 빠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짙게 깔려 있다. 〈이동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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