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전국 농협 지점에서도 민원서류를 발급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은 행정 소비자인 국민에게 정말 반가운 소식이다.
가장 가까운 행정기관을 찾아 서류를 신청하면 공무원이 민원인의 거주지나 본적이 있는 행정기관에 팩스로 대신 신청, 발급받아 전달해 주는 팩스민원제를 더 확대했다는 점에서 모범행정의 대표적 사례라 할 만하다.
그런데도 이 내용이 보도(본보 26일자 38면)되자 내무부 관계자들은 곤혹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가판(街販)이 나온 25일 밤엔 고위간부들이 퇴근을 늦추고 안절부절 못했다.
왜 그럴까. 팩스민원제 확대시행이 신한국당의 대선 공약에 포함될 사안이었다는 점을 알면 의문은 쉽게 풀린다. 한마디로 「김새게 했다」는 것이다.
내무부는 지난해 9월 호적등초본 등 16종을 대상으로 시작한 팩스민원제가 큰 호응을 얻자 7월부터는 신청가능한 서류를 2백15종으로 크게 늘렸다.
때마침 농협 중앙회장 선거에선 팩스민원제를 농협 지점으로 확대하고 조합원에겐 팩스요금도 받지 않겠다는 공약을 내건 후보가 당선했다.
내무부가 농협의 건의를 받아들여 관련 법률의 시행령까지 고친 상태에서 신한국당이 끼여들었다. 당정협의 결과 선거용으로 발표할 때까지 묵히자는 결론이 나왔다. 내무부가 당황해하는 것은 이런 사정 때문이다.
여론조사에서 야당후보가 1위를 달리자 여당후보에 줄을 대던 공무원사회의 오랜 관행이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일부 공직자들은 야당후보가 당선되면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불안감 때문에 전전긍긍한다는 소문도 돈다. 그러나 이번 사례를 보면 내무부는 공무원사회의 일반적인 분위기와 동떨어진 세상에서 사는 부처인 것 같은 느낌이다. 당정협의 내용을 지키지 못한 데 대한 책임감에 앞서 내무부가 더 이상 행정선거의 「선봉」이 될 수 없다는 현실인식이 필요하지 않을까.
송상근<사회1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