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本報 97대선기획자문위원 좌담회]『부동층이 좌우한다』

  • 입력 1997년 9월 25일 20시 17분


《12월18일 실시되는 제15대 대통령선거가 갖는 의미는 무엇이며 5자 대결구도의 혼돈 속에 진행되고 있는 이번 대선은 어떻게 될 것인가. 동아일보가 「97 대선기획자문위원」으로 위촉한 염재호고려대교수 이광형한국과학기술원교수 이한구대우경제연구소장 장달중서울대교수 조배숙변호사 최인호변호사 함재봉연세대교수 등 7명은 23일 본사 충청로사옥에서 15대 대선의 의미와 변화를 조망하는 좌담회를 가졌다.》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이번 대통령선거가 어떻게 돼가느냐고 묻습니다. 워낙 변화무쌍하고 예측불허이기에 그만큼 관심이 더 높은 것 같습니다. ―우선 이번 대선을 앞두고 나타나는 여러가지 움직임들을 우리나라 정당체계의 변화조짐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원래 우리 정치체제는 소선거구제를 통한 양당구조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동안의 정치는 1당 지배 또는 1당 우위의 정당체제였습니다. 87년 민주화 이후 이같은 비정상적 정당구조가 깨지는 듯했으나 3당합당으로 또다시 지속됐습니다. 이런 1당 우위체제가 이번 대선을 계기로 끝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 기존 정당체제 시험대 ▼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든 지금까지와 같은 1당 우위 정당체제는 깨질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그 변화의 형태가 이념적인 것, 즉 보수와 진보의 양상이 아닌 정당의 색깔에 차이가 없는 「중도통합식 정당」 「포괄정당」체제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 근본적 정당정치의 변화를 예상하기는 아직 빠른 것 같습니다. ―새로운 정치형태의 태동이 대략 10년 주기로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우리도 87년 민주화 이후 10년이 흘렀고 일본의 경우도 비슷한 것 같아요. 90년대 이후 일본 자민당은 붕괴됐고 사회당의 이념은 퇴색했습니다. ―정당정치가 이념적 모습을 보이려면 균열구조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그런 게 없는 것 같습니다. ―통일문제도 그렇고 안보문제도 그렇고 정당간 후보간 별다른 차이가 없습니다. 누가 「성장」이냐 「분배」냐고 물을 때 「분배」라고 얘기하는 후보도 없습니다. 겨우 남은 것이 「개혁」 정도이지요. ―「진보」를 들고 나오면 표를 잃는다는 인식이 박혀있어요. 「진보」라고 하면 공산주의와 비슷한 것으로 보는데 우리의 잘못된 정치현실이 만들어낸 잘못된 결과입니다. ―금융실명제 등 김영삼정부가 시도한 진보적 개혁의 결과가 좋지 않게 나타나고 있는 것도 그같은 인식을 굳히는 요인이 된 것 같습니다. ―이인제후보의 경우 진보정당을 할 것이냐는 물음에 이를 부인했습니다. 김대중후보가 왜 이용택씨(전중앙정보부 수사국장)를 영입하고 JP와의 연대에 매달립니까. 이회창후보도 처음에는 이념적인 측면이 강했는데 방향을 돌린 것 아닐까요. 모든 후보가 이념과 실무를 겸한 결합형을 추구하는 것 같은 인상을 줍니다. ―그동안의 우리 정당은 사실 「지역주의」를 근거로 한 것 아닙니까. 이를 대체할 이념이든 이익이든 한 차원 높은 그 무엇이 나타나야 하는데 그것이 잘 보이질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1당 우위 체제의 붕괴는 일시적 반발 현상이 될 소지도 없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번 선거가 지엽적인 선택으로 좌우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됩니다. ―이번 선거를 「미디어정치」의 원년이라고들 말합니다. 그러나 TV토론이 고비용정치형태를 개선하는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습니다. 임기응변에 능해야 점수를 딸 수 있는데 그렇게 할 경우 신뢰성이 없어집니다. 「내실」이 아니라 「겉」을 보고 선택할 우려도 있습니다. ―후보들이 쇼프로 같은데 나가 표를 사냥하는 기분도 들고… 너무 가벼운 대통령을 만드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 안타깝습니다. 신문도 인기도에 따라 경마 중계하듯 하지말고 정책대결을 유도했으면 합니다. ―미디어 시대가 되다보니 미디어조작에 능한 사람을 참모로 중용할 수도 있습니다. 나라일은 신중한 결정을 필요로 하는데… 걱정됩니다. ―정치가 서민에게 다가간다는 의미도 있지만 정치의 우민화, 대중조작의 양상을 띨 가능성도 있습니다. ―선진국에서는 우리처럼 이렇게 자주 토론회를 갖지 않습니다. TV를 통한 국민 접근은 좋지만 이 경우 지도자와 국민이라는 쌍방만 있고 사회를 움직이는 중간집단은 없어집니다. 이들의 역할이 사라짐으로써 대중사회의 병폐가 나타나게 됩니다. 지도자는 TV를 통해 조작을 용이하게 하고 국민은 중간조직을 무시함으로써 이념대결이나 정책대결이 이뤄지지 않게 되는 것이죠. ▼ TV토론 대세 영향못줘 ▼ ―미디어정치 시대의 대결구도에서는 정책보다 과거처럼 조직과 자금이 승패의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할 공산이 큽니다. TV토론으로 이회창후보의 지지도가 떨어지고 김대중후보의 지지도가 올랐다고 보지 않습니다. 이인제후보는 참신한 점이 부각되면서 올라갔습니다만, 결국 TV토론이 대세에 영향을 주지는 못할 것입니다. ―서울 등 수도권에서는 TV의 영향을 받지만 지방은 조직의 영향이 아직 크지 않을까요. 그런 점에서 결국은 당(黨)대 당의 대결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습니다. ―이번 대선의 새 변수로 등장한 이인제후보의 인기는 TV토론과 관계없이 어느 정도 유지될 것으로 봅니다. 국민은 기존 정치세력에 실망했고 변화를 바라는 국민은 이후보를 새로운 인물로 받아들이는 측면이 있습니다. ―마지막까지 가면 이후보에 대한 거품이 빠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습니다. 유권자들은 투표를 할 때에는 현실적으로 돌아서게 마련이죠. 젊은층 가운데 열성적으로 투표장에 갈 이들이 얼마나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미 수차례의 TV토론을 통해 총론적인 내용은 다 나왔기 때문에 앞으로의 토론에서는 세세한 부분을 다루게 되고, 그런 상황에서 누구의 거품이 더 많이 걷힐지가 관건입니다. ―이회창후보는 아들 병역문제로 곤욕을 치르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같은 신변문제는 논의대상에서 사라지게 될까요. ―개인적인 흠집내기는 지양해야 하는데 자신이 불리해질 경우 정책대결보다는 남의 다리를 거는 등 퇴행적인 방법으로 승부를 걸게 될 가능성이 더욱 커지지 않겠습니까. ―우리 국민은 정치인을 판단하는 도덕적 기준에 있어 두가지 합의가 형성돼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자녀의 대학부정입학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병역문제지요. 세금포탈이나 스캔들도 이보다 더하지는 않을 겁니다. 앞으로도 이 문제는 이회창후보에게 어떤 형태로든 걸림돌이 될 것입니다. ―이번 선거가 그동안의 선거처럼 지역구도의 대결로 전개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전망도 있습니다. 영남과 호남으로 대표되는 지역적 변수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최근 여론조사결과 20%에서 많게는 30여%로 나타나는 부동층의 향배에 주목해야 한다고 봅니다. ―국민회의는 지지율보다 당선가능 수치가 올라가는데 상당히 고무되면서도 막판에 가서 지역주의가 선거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하는 것 같습니다. ▼ 여론조사 무응답층 주목 ▼ ―선거에서는 열세의 지지자들이 표를 몰아주는 이른바 「언더독(Underdog) 현상」도 있기 때문에 국민회의는 최근 1위를 고수하는 것에 대해 내심 불안해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또 반(反)DJ정서가 엷어진 것도 사실이지만 3김 정치에서 탈피하고 싶다는 이들도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여론조사에서 무응답으로 나타난 것일 겁니다. 내홍(內訌)을 겪고 있는 신한국당의 향배와 30%를 넘어서는 무응답층을 눈여겨봐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후보들의 건강 사고방식 등은 관심사가 아닌가요. ―그런 것은 딱히 검증할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김대중후보는 4수째니 검증할 것은 다 검증한 상태라고 봐야 합니다. ▼ 정당 정책연합은 바람직 ▼ ―합종연횡의 전망은 어떻습니까. ―현재로선 김종필 조순 이인제후보가 대상이 될 것으로 예상되나 이후보는 그럴 가능성이 없을 것으로 봅니다. ―합종연횡에서 김종필후보의 경우 선택을 하는 쪽이라면 조순후보의 경우는 선택을 당하는 쪽이 되지 않을까요. ―이회창 김대중 이인제후보는 독자적으로 움직이고 나머지 두 후보가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데 동감입니다. 이인제 조순후보간 가능성도 있고 이인제 김종필후보도 가능합니다. ―합종연횡의 영향력은 후보간 정체성의 차별화 정도에 따라 다를 것으로 봅니다. 불가능하겠지만 예를 들어 이인제 김대중후보간 연대가 이뤄질 경우 폭발적인 힘을 얻게 되지 않을까요. ―DJP연합은 김대중후보의 약점인 「색깔론」을 희석시켜 핵우산을 제공하는 것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되겠죠. ―합종연횡의 정치학적 의미도 집고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합종연횡을 대부분 권모술수라고 부정적으로 보지만 사실은 그렇게 가야 합니다. 정당간 정책연합을 통한 연대는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미국과 영국을 제외한 나라에서 양당제가 제대로 되는 나라가 없습니다. 「3당 통합」이 아니라 「정책연합」이죠. ―다자간 경쟁구도 하에서는 과당경쟁을 유발해 소위 박정희신드롬과 같은 가치관이 나올 수 있습니다. 새로운 리더십의 유형이 개발돼야 하고 언론이 나서서 가치관의 혼란을 막아야 합니다. ―다자구도 하에서 선거가 치러지면 표밭이 갈라져 30%선의 지지를 받고도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습니다. 프랑스처럼 결선투표제를 도입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론적으로는 가능하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하려면 반드시 전제가 따라야 합니다. 대통령중심의 권력구조에 수정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30% 정도의 지지로도 지금과 같은 권력을 갖는데 결선투표까지 하면 더 심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막강한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시켜야 합니다. 〈정리〓양영채·김정수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