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후보 참모진]황우려씨등 「8인회의」 주춧돌

  • 입력 1997년 7월 24일 20시 00분


이회창(李會昌)후보는 원외인사→원내 초반합류파→원내 후반합류파를 각 단계마다 중용하는 방법으로 세를 불렸고 결국 이를 통한 「대세론」으로 집권여당의 대통령후보가 됐다. 지난해 1월 이후보가 신한국당에 입당한 직후부터 연말까지는 원외인사들의 활약기다. 이 시기의 주력은 이른 바 「8인회의」. 8인회의는 서울 종로구 이마빌딩의 이회창변호사 사무실에서 정기 회의를 가진 멤버들. 이회창대통령후보를 만든 원훈(元勳)공신이다. 黃祐呂(황우려)의원 黃榮夏(황영하)전총무처장관 李興柱(이흥주)전국무총리비서실장 陳永(진영) 安東壹(안동일)변호사 陳京鐸(진경탁)전의원 柳瓊賢(유경현)전평통사무총장 房錫炫(방석현)서울대교수가 그들. 이후보의 의원보좌관인 장다사로씨는 이대표를 그림자처럼 따르면서 일정을 관리해왔다. 그러다 지난해말을 기점으로 徐相穆(서상목) 白南治(백남치) 河舜鳳(하순봉) 邊精一(변정일) 金榮馹(김영일) 朴成範(박성범)의원 등의 원내인사들이 속속 합류했다. 이후보는 이들에게 무게중심을 옮겼다. 자연스럽게 8인회의는 막후 참모역으로 잠복했지만 그렇다고 신임도가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이무렵 중앙일보 편집국장 출신의 高興吉(고흥길)씨가 이후보의 비서실장으로 들어오면서 具凡會(구범회) 尹昶重(윤창중) 李炳孝(이병효) 閔國泓(민국홍)씨 등 언론계 간부 출신인사들의 합류도 줄을 이었다. 지난 3월 이후보가 당대표를 맡으면서는 하루가 다르게 세가 불어났다. 梁正圭(양정규) 姜在涉(강재섭) 尹源重(윤원중)의원 같은 「허주(虛舟·김윤환고문의 아호)계」와 金容甲(김용갑)의원같은 후발 합류파가 경선대책위의 중책을 맡았다. 〈박제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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