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경선 이모저모]결선투표전 연호 경쟁 후끈

  • 입력 1997년 7월 22일 08시 09분


팽팽한 긴장감과 흥분, 환호와 탄성으로 시종한 신한국당의 전당대회였다. 6명의 후보가 겨룬 1차투표와 李會昌(이회창)후보와 李仁濟(이인제)후보가 겨룬 결선투표까지 거의 12시간동안 계속된 이날의 전당대회는 바로 한편의 드라마였다. ○…오후 1시15분경 개표를 시작한 뒤 10분여가 지나자 개표장내에서는 『결선투표까지 갈 것 같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개표 참관인들은 8대의 컴퓨터를 수시로 살펴보면서 『이회창 후보의 득표율이 40%안팎인 것 같다』고 전언. ○…1차투표 개표 결과 불과 5표차로 이인제후보와 이한동후보가 2,3위로 나눠지자 전당대회장은 탄식과 흥분으로 절정. 이런 가운데 이인제후보는 자신이 2위를 한 사실을 미처 제대로 실감하지 못한 듯 잠시 멍한 표정을 짓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두손을 높이들고 환호하는 대의원들에게 답례. ○…이인제후보는 민관식선관위원장의 개표결과 발표가 끝나자마자 옆자리의 이수성후보와 이한동 김덕룡 후보에게 차례로 다가가 90도로 깍듯이 인사를 하면서 악수를 청하는 등 2차투표에서 「4인연대」의 지지를 기대하는 모습. ○…이한동후보측은 2위와의 격차가 불과 5표로 드러나자 망연자실한 표정. 玄敬大(현경대)의원 등 이후보진영은 단상에 올라가 민위원장에게 『처음있는 개표방식인 만큼 개표과정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며 『개표과정에 대한 설명을 들어보고 재검표에 들어가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 이후보도 결과가 믿어지지 않는 듯 눈을지그시 감은 채마음을 가다듬은 뒤 지도부에정식으로재검표를 요구. ○…재검표가 끝나자 오후 5시반경 대회속개가 선언됐으나 상당수 대의원들이 자리를 뜨는 바람에 결선투표가 지연. 결선투표에 오른 이인제후보와 「4인 연대」의 이한동 김덕룡후보는 연단에 먼저 올랐다가 이수성후보가 뒤이어 입장하자 연단앞으로 함께 나가 손을 맞잡아 올리고 대의원들에게 인사하며 이인제후보에게 표를 몰아줄 것을 부탁. ○…이인제후보는 대의원석을 한바퀴 돈 뒤 15분이 지난 오후 5시45분경 나머지 3명의 연대후보들과 함께 연단으로 올라갔으나 이회창후보가 대의원석을 한바퀴 더 도는 바람에 민위원장이 또다시 『이회창후보, 빨리 올라오라』고 고성을 지르기도. 이회창후보가 5분쯤 지난 뒤 연단에 올라서자 비로소 정견발표는 시작될 수 있었다. 민위원장은 『일부 대의원들의 요구가 있고 두 후보도 흔쾌히 수락해 예정에 없던 정견발표기회를 주기로 했다』고 설명. ○…정견발표에 나선 두 후보는 불꽃튀는 마지막 연설 대결을 벌였다. 이인제후보는 연설 모두에 『이한동 이수성 김덕룡후보와 함께 당의 정권재창출과 21세기 위대한 한국을 건설하기 위해 힘을 모으기로 했다』며 「4인 연대」를 상기시키며 세 후보를 지지하는 대의원들의 표를 겨냥. 그는 또 『박찬종후보도 4인 연대를 지지했고 최병렬후보도 평소 따뜻한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며 결선분위기를 「이회창 대 반이회창 구도」로 몰아가려고 애쓰는 모습. ○…이어 이회창후보는 정견발표에서 1차 투표에서 탈락한 나머지 경선주자와의 인연을 일일이 소개하며 반격을 개시. 그는 『이한동동지는 정치에 입문했을 때 많은 조언을 해준 다정한 친구이고 이수성동지와는 정치이념의 색깔이 같고 총리를 하면서 마음을 주고 받았으며 김덕룡후보는 문민개혁을 같이 했다』며 우회적으로 지지를 호소. ○…이날 사회를 본 孟亨奎(맹형규)의원은 李會昌(이회창)후보의 당선이 확정된 직후 이후보를 소개하면서 『「민족의 대표」가 선출됐다』고 말해 빈축을 사기도. 때문에 TV를 통해 이 광경을 지켜본 시민들은 언론사에 전화를 걸어 『아무리 여당 대통령후보가 됐다지만 민족의 대표 운운하는 것은 심한 것 아니냐』며 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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