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한국망명을 신청한 북한노동당 黃長燁(황장엽)비서를 북한에서 직접 만난 국내인사는 거의 없다. 황비서가 요직을 거쳤지만 남북관계의 전면에 나선 일은 없기 때문이다.
황비서를 잘 아는 아마도 유일한 한국인은 지난 94년7월에 귀순한 김일성대학 경제학과 교수 출신의 趙明哲(조명철·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원)씨다.
조씨는 김일성대학 학부 경영조정과 학생 때부터 박사과정까지 8년에 걸쳐 황비서의 강의를 들었고 개인적으로도 황비서의 사랑을 받은 제자였다.
당시 황비서는 강의에 엄격하고 학생들에게 학점을 매우 짜게 주었지만 조씨는 주체철학 과목에서 「최우등 학점」(북한 대학에서의 평점은 10점 만점에 9점 이상은 최우등, 7∼8점은 우등, 5∼6점은 보통, 4점 이하는 낙제)을 받았다.
조씨의 회고에 따르면 황비서는 처음에 마르크스 레닌철학을 강의하다 주체철학의 체계화와 함께 주체철학 강의를 주로 맡았으며 또하나의 전문인 고대철학을 강의하기도 했다.
조씨는 학부학생이던 78년부터 그의 강의를 들었다. 황비서는 65년부터 80년까지 김일성대학 총장을 지내면서도 강의를 했다. 또 80년 당비서로 들어간 이후에도 종종 김일성대학에서 초빙강의를 했으며 86년까지는 김일성대학에서 시행되는 당간부 위탁교육에서 주체철학 강의를 계속했다.
1m71 정도의 중키에 호리호리한 황비서는 북한최고의 철학자로 잘 알려진데다 성실하고 명강사여서 학생들 사이에 인기가 높았다.
평소에 조용하고 강의 때의 목소리도 작은데다 학문 연구외에는 한눈을 팔지 않는 전형적인 학자풍이었다. 황비서는 일제때 일본대학에 유학했던 경험을 털어놓은 일도 있다.
조씨는 12일밤 황비서의 망명소식을 듣고 『우선 착잡하다』면서도 『개인적으로 정말 고맙고 감사하다. 정신적으로 큰 의지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조씨는 또 『지식과 관록에서 북한의 최고인물이고 사상분야의 지주였던 그의 망명은 북한이 더 이상 국가로 존재하기 어려움을 말해 준다』고 덧붙였다.
〈김기만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