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자 회고록 발췌2]「노태우」 일찍 후계자 낙점

  • 입력 1996년 12월 18일 07시 55분


나는 친구 노태우가 그분 심중에 후계자로서 자리잡았을 때 노태우는 이미 그분 친구로서가 아니라 나라를 위해 헌신할 정치적 2세로서 그분 내부에서 완성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후임자배려 세심아무 준비도 예고도 없이 어느날 문득 대통령이 되어야했던 경험―자신의 후계자에게 만은 준비없이 그자리를 맡아 자신이 겪어야 했던 대격변 긴장 시행착오 힘겨운 의무감 같은 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주고 싶었던 것이 그분 소망이었으리라. 준비없이 맡겨진 중책으로 인해 그분은 얼마나 많은 긴장과 불안, 그리고 힘에 부친 능력을 요구받았는지 모른다. 그런 이유로 후계자에 대한 그분 배려는 그처럼 눈물겨운 것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임기내내 그분은 자신의 후임자에게 적절한 경험과 경륜을 쌓게 하고 자질을 기를 수 있게 해주려고 의도적으로 애를 쓴 섬세한 흔적을 남기고 있다. 재임기간동안 그분이 후임자 노태우에게 맡겨준 역할과 경력이 이 사실을 구체적으로 증언하고 있다. 노태우는 예편과 동시에 정무제2장관이라는 중책을 맡아 나랏일을 배우고 있다. 올림픽 유치에 성공을 거두자마자 그분은 신설된 첫 체육부장관에 그를 임명한다. 체육부장관을 거쳐 그는 내무부장관도 맡고 있다.국제감각 익혀83년이 되자 그는 서울올림픽과 아시아경기의 조직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기고 있다. 그에게 또다시 그 중요한 일을 맡기던 날 그분이 내게 하던 말이 생각난다. 『내가 그 어떤 국정경험도 없이 대통령이 되는 바람에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는 아무도 모를 거요. 노태우에겐 그런 고생 시키지 않으려고 이런저런 요직을 거쳐 내무부장관을 시켰더니 내무부엔 산하기관이 많고 그러다 사고라도 나면 큰일인데다 또 아부꾼들이 몰려 제2인자라고 야단들이니 정말 정성들여 조심스럽게 키워주기도 여간 힘드는 게 아닙디다. 이젠 웬만큼 국내정치 경험을 얻게 해주었으니 안전하게 보호해주는 일에 신경을 써야할 것 같고 또 국제감각도 익히게 해줘야 할 것 같아 올림픽조직위원장을 맡기게 된 것이지요』 성급한 표현을 할 수 있다면 그분은 후임자 노태우에게 구체적이고도 치밀한 대통령수업을 시키고 있는 셈이다. 그 치밀한 보살핌은 그분의 임기내내 계속된다. 그분은 노태우를 단지 심중의 후계자로 선택하는 데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분은 그에게 자신에게선 결핍되었던 치명적인 부분들을 메워 줌으로써 자신을 뛰어넘는, 자신보다 더 유능하고, 더 복많은 대통령이 되길 원했다. 실망이나 배신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신앙처럼 후계자를 믿고 가꿔갔다. 권력앞에선 우정도 속수무책이라는 통속적 발언은 그분의 순수앞에서 그렇게 나가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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