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병 임신부에… 의료진 20여명 “내 피 뽑아라”

김소민 기자 입력 2020-07-29 03:00수정 2020-07-2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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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소판 감소증 앓는 40대 임신부… 코로나에 혈액수급 어려워져
의료진 헌혈 동참에 무사히 출산 “모자 상봉 도와준 은혜 평생 간직”
27일 서울 양천구 이대목동병원 산부인과 앞에서 의료진이 환하게 미소 짓고 있다. 왼쪽부터 전공의 강미나 씨와 김영주 교수, 전공의 최지원 씨. 강 씨가 손에 들고 있는 건 헌혈증서다. 이대목동병원 제공
지난달 16일 서울 양천구 이대목동병원. 이 병원 복도 곳곳엔 ‘혈액 급구’를 알리는 게시물이 붙었다. 산부인과 김영주 교수(57·여)가 붙인 것이다. 김 교수는 병원 전산 차트망 메인 화면에도 ‘혈액형이 O형인 직원의 도움을 구한다’는 글을 올렸다. 직원들이 참여하는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도 같은 내용의 글을 남겼다.

김 교수는 이틀 뒤 혈소판 감소증을 앓고 있는 40대 임신부 A 씨의 출산을 위해 제왕절개 수술을 앞두고 있었다. 출산을 앞둔 임신부의 혈소판 정상 수치는 평균 22만 개가량인데 A 씨는 평균치의 2%가 채 안 되는 3000개 정도였다. 혈소판은 상처가 났을 때 피를 멎게 하는 등 혈액응고 역할을 한다. 김 교수는 A 씨의 혈소판 수치가 너무 낮아 “의사 생활 27년에 처음으로 겁이 났던 수술”이라고 했다.

김 교수가 O형 피를 급구할 당시엔 이대목동병원뿐 아니라 전국 대부분의 병원이 보유 혈액량에 여유가 없던 상황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헌혈량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지난달 16∼18일 기준 혈액 보유량은 적정 보유량인 5일 치를 밑돌았다.

김 교수가 백방으로 ‘혈액 급구’를 알린 덕에 수술 전까지 의사와 직원 등 20여 명이 팔을 걷고 헌혈에 나섰다. 1, 2년차 전공의들도 헌혈에 동참했다. A 씨와 같은 혈액형인 게 행운이었다고 한 전공의 강미나 씨(33·여)는 “아직 1년차라 환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도 한계가 있을 때가 많다”며 “작지만 환자에게 확실한 도움을 준 것 같아 오히려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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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씨는 지난달 18일 2.3kg의 남자아이를 낳았다. 미숙아로 태어난 아기는 한 달 가까이 입원치료를 받았다. 코로나19로 면회가 제한돼 A 씨는 퇴원할 때까지 아기를 2번밖에 보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A 씨는 아기가 태어나기까지의 과정이 기적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A 씨는 24일 병원 의료진과 직원들 앞으로 보낸 편지에 “저희 모자가 무사히 상봉할 수 있게 도와주신 선생님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평생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고 썼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코로나19#혈액#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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