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을 넘긴 백발노인이 50년간 지켜온 신념이다. 혈액과 장기 ‘매매’ 문화를 ‘기증’으로 바꾸는 데 크게 기여한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박진탁 이사장(82·사진)의 말이다. 그는 국내 최초의 헌혈자이자 장기 기증인이기도 하다. 박 이사장은 “헌혈의 대가로 영화표도 줘선 안 된다. 대가를 주면 선의가 사라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반백 년의 세월을 헌혈 및 장기 기증 운동에 헌신한 박 이사장을 20일 서울 충정로에 위치한 그의 집무실에서 만났다.
“헌혈이라는 단어도 없던 그때 오해도 많이 받았죠. 피 모아서 되파는 거 아니냐고….”
박 이사장은 1968년 생애 최초이자 국내 최초로 헌혈을 한다. 우석대병원(현 고려대병원)에서 원목으로 근무하던 시절 응급 환자로 실려 온 22세 청년에게 380cc의 혈액을 나눠준 것이다. 수혈을 받은 청년이 보름 뒤 건강하게 퇴원하는 모습을 본 박 이사장은 이후 헌혈협회를 만들어 본격적으로 ‘피 주기 운동’을 시작했다.
‘매혈’에서 ‘헌혈’로 문화가 바뀌어 가자 박 이사장은 “가족을 위해 살겠다”며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하지만 미국에서 그는 인생의 두 번째 전환점을 맞는다. 1990년 이웃에 살던 친구가 뇌사하자 가족이 장기를 기증하는 모습을 처음 보게 된 것.
“당시 친구의 중학생 딸이 ‘기증받은 사람을 통해 아빠가 살아 있는 것 아니냐’고 엄마를 설득하더군요. 그 길로 귀국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박 이사장은 1991년 국내 최초로 신장을 기증한다. 3000만 원에 신장이 거래되던 시절에 한 푼도 받지 않고 모르는 이에게 신장을 떼어준 것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부로부터 예산을 지원받아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를 창립했다.
이후 2000년 52명에 불과했던 뇌사 장기 기증자는 2017년 515명으로 10배가량으로 늘었다. 하지만 장기 이식 대기자는 3만4187명(2017년 말 기준)에 달해 여전히 기증자가 턱없이 부족하다. 그가 “갈 길이 멀었다”고 말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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