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서 땀흘리는 기술직에 희망 됐으면”

  • 동아일보

두산인프라코어 첫 기술직 임원에 오른 이희연 상무

올 초 회사 최초의 기술직 출신 임원이 된 이희연 기술상무가 인천 두산인프라코어 본사에서 차세대 엔진으로 손꼽히는 ‘G2엔진’을 앞에 놓고 환하게 웃고있다. 두산인프라코어 제공
올 초 회사 최초의 기술직 출신 임원이 된 이희연 기술상무가 인천 두산인프라코어 본사에서 차세대 엔진으로 손꼽히는 ‘G2엔진’을 앞에 놓고 환하게 웃고있다. 두산인프라코어 제공
 “아들 같은 후배들이 결혼식 주례를 서 달라고 해도 ‘내가 자격이 되나’란 생각에 못 나섰습니다. 이제는 당당하게 주례석에 설 수 있겠네요.”

 11일 인천 동구 두산인프라코어 본사에서 업무보고를 막 마치고 만난 이희연 기술상무(58)는 웃으며 이렇게 얘기했다. 1937년 조선기계제작소로 출범한 이 회사에서 기술직 직원이 임원이 된 것은 이 상무가 처음이다.

 최근 일부 기업에서 배출이 시작되고 있지만 이 상무 같은 기술직 출신 임원은 여전히 업계에서 희귀한 존재다. 이 회사 인천공장에는 건설기계 생산과 엔진 생산 등 두 영역에서 800명가량의 기술직 직원이 일하고 있다. 회사는 이들을 이끌 현장 리더로 기술상무 직위를 신설했다. 이 상무는 지금은 한국폴리텍대 성남캠퍼스가 된 성남직업훈련원에서 공부한 뒤 1978년 당시 대우중공업에 입사했다. 엔진 생산 분야에서만 40년 가까이 근무했다.

 지금은 핵심 인력으로 대접받지만, 예전에는 점퍼 차림으로 현장에서 일하는 기술직 사원의 대우가 변변치 못했다. 사무직 직원보다 월급이 적은 데다 회사 명함이 나오지 않아 인쇄소를 찾아 자비로 명함을 만드는 일도 있었다. 기술자들 스스로도 때리고 맞으며 일을 가르치고 배우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급여 수준은 크게 올라갔고 각자 가진 기술을 무기로 안정적인 직장 생활을 하게 됐다. 모두 상당한 수준의 현장 기술을 보유하고 입사한다.

 이 상무는 “당당하게 일하고 능력을 키우면 임원도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에 이번 승진이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기술직 직원이 ‘사고 없이 정년까지 일한다’는 수준의 목표가 아니라 더 큰 꿈을 가질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이제 이 상무는 후배들의 역할모델이다. 하지만 사실 그 후배들이 지금의 자리에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기도 하다. 승진을 앞둔 지난해 말 이 상무는 20대 후배 직원 2명과 2박 3일 국내 여행을 다녀왔다. 늘 큰형님 같은 역할을 해온 터라 후배들과 어울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내 야구동아리와 봉사활동 단체도 이끌고 있다. 이 상무는 “내가 좋은 평가를 받아 승진했다면, 아마도 후배들의 지지가 가장 큰 이유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승진 소식을 들었을 때 나를 이끌어 준 선배들에 대한 고마움과 아들 같은 후배들을 어떻게 이끌어야 할까 하는 고민이 많이 들더라”고 털어놓았다. 이런 고민 끝에 이 상무는 올해 기능장 교육 프로그램을 따로 운영하겠다는 계획을 세워뒀다. 생산 분야의 위상을 끌어올리겠다는 것도 그의 포부다.

 그가 입사했을 때 엔진을 출하하던 바로 그 자리에서 여전히 엔진이 실려 나가고 있다. 당시엔 독일 회사에서 배워온 기술로 엔진을 만들었다. 지금은 독일 회사에서 납품을 요청할 정도로 기술이 발전했다. 이 상무는 “정보기술(IT) 같은 첨단 분야도 중요하지만 현장에서 땀 흘리는 이들이 여전히 중요하다고 믿는다”고 했다.
 
인천=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두산인프라코어#이희연#g2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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