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한민족여성네트워크 참석… 지구촌 무대서 활약하는 한국 여성 2인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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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배경란 사우디국립병원 진료감독관 “남보다 4배 더 뛰니 회의적 시선이 존중으로 바뀌어”

“백인도 아닌 당신이 이 일을 할 수 있겠어.”

배경란 씨(60·사진)가 1988년 사우디아라비아 야마마국립병원에서 승진해 동아시아인 최초로 간호부장으로 임명됐을 때 배 씨 주변에서 질시 어린 질문이 쏟아졌다. 하지만 20년 뒤 사우디에서 최고 수준으로 꼽히는 킹파흐드국립병원(KFMC)이 그에게 먼저 “진료감독관(임상 감사·배 씨의 직책)을 맡아 달라”며 찾아왔다.

여성가족부 주최 ‘세계한민족여성네트워크’(24∼26일)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배 씨는 22일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남들보다 4배 더 열심히 뛰어다니니 사람들의 시선이 ‘존중’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배 씨가 사우디로 간 것은 1981년, 한국에서 간호사 생활을 시작한 지 2년째 되는 해였다. 사우디가 오일머니로 각국의 의료인을 수입하던 때였다. 한국에서 한 해 간호사 150여 명이 사우디로 파견됐지만 대다수는 낯선 문화와 언어에 적응하지 못한 채 의무 근무기간 10개월만 채우고 돌아갔다. 하지만 배 씨는 전 세계에서 모여든 인재와 함께 일할 수 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끼고 현지에 남기로 했다.

25개국에서 모여든 다양한 개성의 간호사들을 이끄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 온 의료진이 8시간을 걸려 해내는 작업을 2시간 안에 끝내는 배 씨를 보며 평가가 조금씩 달라졌다.

동료 의료인들은 “한국에서 온 간호부장은 왜 저렇게 항상 뛰어다니느냐”고 혀를 내두르다가 결국 배 씨를 신뢰하게 됐다고 한다. “나를 믿고 사지(死地)로 뛰어들 수 있는 ‘내 편’을 10명만 만들면 아무리 큰 전투라도 이길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배 씨가 35년간 지낸 사우디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지난해엔 여성 참정권이 인정돼 여성 지방의원이 선출됐고 기업에서도 여성 간부의 비율이 급격히 늘고 있다고 한다.

배 씨는 직장 내 성차별에 힘들어하는 한국 내 여성들에게 “남성만큼 독해져야 성공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육아의 책임을 엄마에게 전가하는 ‘독박 육아’ 문화와 여성에게 불리한‘일-가정 양립’ 문화도 문제지만 육아와 직장 생활의 경계를 명확히 긋지 못하는 여성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얘기다.

중동 진출을 꿈꾸는 청년들에겐 현지 문화를 철저히 공부하라고 했다. 많은 국내 기업 임직원이 사우디에 파견돼 있지만 다수가 아랍어는 모르고 현지 관례와 풍습을 익히지 않은 상태라는 것. 배 씨는 “출국 전 아랍 문화를 배우고 익히고 조언을 구하는 등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지희 KTCC한태교류센터 대표 “한국인은 거칠고 술고래? 태국의 편견, 한류로 깼죠”

 
“일본 입주민들이 한국인이 들어오는 걸 싫어해 방을 내줄 수 없다는 집주인의 말을 듣고 눈물이 왈칵 솟았죠. 하지만 동시에 ‘기필코 이곳 태국에 한국을 제대로 알려야겠다’고 다짐하게 됐습니다. 사무실 개소도 이듬해 광복절(2003년 8월 15일)에 맞춰서 했죠.”

서울 마포구 양화로에 있는 홍지희 KTCC한태교류센터 대표(49·여·사진)의 서울 사무실은 태국 영화와 관광명소, 각종 축제 등 태국 관련 포스터로 가득했다.

홍 대표는 태국에서 문화 콘텐츠, 음식, 축제, 여행 등 다양한 분야의 ‘한류 전도사’로 유명하다. 제주에서 열린 ‘제16회 세계한민족여성네트워크’ 참석차 한국에 온 홍 대표를 29일 만났다.

1991년부터 태국어 통역사로 일하던 홍 대표는 태국인들이 한국을 너무 모른다는 생각에 한국을 알리는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

2002년 태국에 정착하기 위해 거주지를 알아보던 중 집주인이 “주변에 사는 일본인들이 거칠고 술도 많이 마셔 한국인을 싫어한다”며 집을 내주기를 거부하자 그는 본격적으로 한국을 알리는 사업을 하기 시작했다. 홍 대표가 가장 주력한 분야는 방송과 영화 등 콘텐츠 제작이다. 세계적 관광대국인 태국이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강점이 있다고 봤기 때문. 한국의 문화·요리 등을 소재로 한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태국에 한국을 알렸고, ‘대장금’과 ‘허준’ 등 한국 드라마가 인기를 얻자 사업은 더 탄력을 받았다.

특히 홍 대표가 공동제작을 맡은 태국 영화 ‘헬로 스트레인저’가 2010년 태국 박스오피스 1위를 하는 등 ‘대박’을 친 것이 큰 힘이 됐다. 한국에서 촬영한 이 영화가 인기를 끌고 그 결과로 이듬해 한국을 찾은 태국 관광객이 30% 정도 증가하는 등 효과가 있자 한국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한국을 무대로 촬영하는 외국 영화를 적극 지원하는 계기가 됐다. 이후 홍 대표는 드라마 ‘풀하우스’의 태국 리메이크 버전 제작도 맡았다.

홍 대표는 케이팝 커버 댄스 페스티벌, 한-태 우호 축제 등 기존 사업을 계속하면서 한국이 등장하는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 제작을 진행 중이다. “10여 년간 급성장한 한류가 이제는 경제적으로 열매를 맺어야 하는데 태국에서 싸구려 한국 여행상품이나 제품을 판매해 국가 이미지를 망치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워요. 태국은 동남아의 중심 국가이고, 태국에서의 한류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이날 태국으로 출국한 홍 대표의 말이다.

김성규 기자 sunggyu@donga.com·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세계한민족여성네트워크#배경란#사우디국립병원 진료감독관#홍지희#ktcc한태교류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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