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마음의 상처, 밴드로 감싸줄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18일 03시 00분


코멘트

서울 관악署 ‘밴드림’ 초중고생에 인기… 경찰관 사진-전화번호 함께 넣어
2만개 밴드 두달만에 동나… 학교폭력 상담전화 30% 늘어

서울 관악경찰서가 학교전담경찰관의 이름과 사진, 연락처를 함께 적어 관내 초중고교에 나눠주고 있는 밴드. 관악경찰서 제공
서울 관악경찰서가 학교전담경찰관의 이름과 사진, 연락처를 함께 적어 관내 초중고교에 나눠주고 있는 밴드. 관악경찰서 제공
어디에도 내 편은 없다고 느껴졌다. 서울 관악구의 A중학교 3학년 장우람(가명·15) 군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이른바 ‘노는 친구’들로부터 악몽 같은 괴롭힘에 시달렸다. 폭력배 같은 학교 선배와 같은 학년 친구들의 “네 아빠 차 키 가져와”란 지시에 아버지 차 키를 몰래 갖다 준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올 3월엔 도저히 견디기 힘든 일이 발생했다. 평소 장 군을 괴롭히던 친구들이 휴대전화를 빼앗아 음란 사진과 동영상을 같은 반 학생들이 가입돼 있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것이다. 평소 내성적인 성격의 장 군은 친구들의 음흉한 눈초리에 당황스러웠다. 너무나 실망스러워 해서는 안 될 상상까지 했다. 그때 장 군의 눈에 관악경찰서 학교전담경찰관(SPO)이 나눠준 일회용 반창고(밴드)가 보였다. 학교전담경찰관의 얼굴 사진과 휴대전화번호가 적혀 있는 밴드였다. 장 군은 곧바로 연락을 했고 출동한 경찰과 상담했다. 경찰은 학교폭력 피해 신고를 접수하고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다. 장 군을 괴롭히던 학생들은 결국 경찰 조사를 받았고 장 군은 긴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관악경찰서는 3월부터 관내 57개 초중고교에 다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밴드와 꿈(Dream)의 합성어인 ‘밴드림’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밴드 앞면에는 경찰관 사진과 전화번호가, 뒷면에는 ‘너의 상처를 치유해줄게’ 같은 응원 메시지가 있다. 실제로 다칠 일이 많은 10대 학생들이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학교생활 등을 통해 입은 마음의 상처까지 치유해 주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밴드림 아이디어를 낸 라기인 관악서 학교전담경찰관은 “경찰 명함 대신 학생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 고민한 끝에 밴드를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그동안 관악서에서는 학용품과 비타민, 물티슈 나눠주기 등 학생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기 위한 여러 시도를 했지만 밴드만큼 반응이 좋은 적이 없었다.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제작한 2만여 개의 밴드가 모두 동이 났다. 길보미 양(12·서울 당곡초)은 “항상 가지고 다니면서 언제든지 경찰 아저씨한테 연락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10대 학생들이 경찰에 요청하는 상담전화가 밴드를 나눠주기 전에 비해 30% 이상 늘어났다.

관악서는 관할 구역인 신림동 등지가 청소년들의 일탈 장소이기 때문에 밴드림 사업 외에도 다양한 청소년 지원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7월부터 관악구청, 청소년지원센터 등과 함께 찾아가는 상담 서비스인 ‘런닝폴’을 운영하며 학교 밖 비행 청소년을 위한 검정고시 준비와 취업 알선 등을 해오고 있다. 구은영 관악서 여성청소년과장은 “신고를 기다리는 것이 아닌 친근하게 학생들에게 다가가 적극적으로 피해자를 구제해주는 방법을 생각하다 이 같은 사업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허동준 기자 hungry@donga.com
#밴드림#서울 관악구#경찰관 사진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