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그려줘”…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준 네 살 아들

안영배 전문기자 입력 2015-05-09 03:00수정 2015-05-09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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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뚜기와 함께하는 오뚜기 인생]국내 1호 의수화가 석창우 화백
쇠갈고리 손에 먹물을 입힌 붓을 고정시킨 뒤 수묵 크로키를 시연하고 있는 석창우 화백. 그 뒤로 거실 벽면에 사이클 선수의 크로키 그림이 걸려 있다. 박경모 전문기자 momo@donga.com
깨달음을 추구하는 동양의 수행 체계 중에 망신참법(亡身懺法)이라는 극단적인 수련법이 있다. 자신의 신체 일부를 돌 등으로 내리쳐 훼손해가며 참회를 하고 진리를 구하는 방법이다. 대표적으로 신라시대 법상종을 개창한 진표율사가 유명하다. 그는 21일간 자신의 신체를 돌로 훼손해가며 수행한 끝에 지장보살과 미륵부처를 친견했다고 한다.

‘피터팬’의 후크 선장처럼 쇠갈고리 손을 하고 있는 ‘의수(義手)화가’ 석창우 화백(61). 기자는 그를 지켜보면서 불현듯 망신참법이 떠올랐다. 그것도 2014년 3월 소치 장애인겨울올림픽의 폐막식을 중계하는 TV 화면을 통해서…. 러시아 피시트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국악신동’ 송소희의 아리랑 민요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석 화백이 퍼포먼스를 펼치는 장면이었다. 그는 쇠갈고리 손에 먹물을 잔뜩 머금은 붓을 끼워 넣고서 대형 화선지(856cmx210cm) 위에 5개 올림픽 종목 선수들의 역동적인 모습을 크로키 기법으로 그려냈다. 완성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2분 37초. 이를 지켜본 4만여 관중들은 석창우 화백의 놀랍고도 신기한 퍼포먼스에 감탄했다.

당시 이름 석 자도 낯선 그를 보며 왜 망신참법이란 수련법이 머리에 스쳤는지 지금도 기자는 그 이유를 모른다. 다만 언젠가는 그와 만나게 될 인연이라는 느낌만은 강하게 받았다.


그리고 1년이 지난 후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그와의 만남은 이뤄졌다. 이달 6일 서울 대방동의 그의 작업실. 처음 만나는 손님에게 갈고리 손으로 보이차 한 잔을 내놓는 그가 전혀 낯설지 않았다. 대뜸 30년 세월을 화두로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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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 선수의 트리플러츠(왼쪽)와 트리플토루프(오른쪽)를 묘사한 수묵 크로키. 2014년 작.
―중국의 속언에 ‘하동삼십년(河東三十年) 하서삼십년(河西三十年)’이란 말이 있지요. 황허(黃河)의 동쪽에 있던 마을이 30년을 지나고 보니 황허 서쪽에 있게 됐다는 뜻인데….

“손 있어 30년 세월을 살았으니 사고 당하고 손 없이 30년 세월을 살아보리라 작정했지요. 작년(2014년)이 정확히 손 없이 살아온 마지막 30년이었습니다. 올림픽 퍼포먼스를 끝내놓고 보니 많이 헛헛했습니다.”

그는 기자의 화두에 빙그레 웃더니 망설임 없이 답했다. 직관으로 30년의 의미를 진작 깨닫고 있던 거였을까. 동양철학을 전공한 기자에게는 역학 스승이 있다. 스승은 중국 하동과 하서를 예로 들며 세상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나 사단은 서로 인과법으로 돌고 돌아 30년이 지나면 정반대의 일이 전개되는 이치를 역(易)철학으로 설명하곤 했다. 사람 역시 겨울과 봄이라는 절망과 시련의 30년 시기가 있는가 하면 여름과 가을이라는 희망과 결실의 30년이 있다는 인생 사계(四季)도 설파했다.

올해 61세인 석창우 화백 역시 그랬다. 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하고 중소기업의 전기관리자로 일하던 1984년 10월 29일 2만2900V의 고압 전류에 감전되는 사고를 당했다. 그의 나이 30세, 아내(곽혜숙)와의 사이에 어린 남매를 둔 패기왕성한 가장이던 때였다. 그가 깨어났을 때는 양팔과 발가락 두 개가 절단되고 뇌출혈 수술도 받은 후였다. 인생 사계로 치면 절망과 시련의 기간이었다.

그런데 수술을 마친 뒤 집에서 재활치료로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노트를 들고 와서는 “그림을 그려 달라”는 네 살배기 아들의 뜬금없는 말 한 마디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놓게 된다. 아들이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아들에게 아무것도 해준 게 없던 터였다. 그런 아들의 부탁을 꼭 들어주고 싶었다. 그는 의수에 볼펜을 끼워서 하루 종일 그림을 그렸다. 참새, 독수리 등 주로 동물을 그려줬다. 그런데 단 한 번도 그림 공부를 해보지 않았던 전기기술자가 그린 그림을 보고 아이가 좋아할 뿐만 아니라 아내와 주위 사람들도 잘 그린다며 치켜세웠다. 특히 처형은 그의 예술적 재능을 알아보고 정식으로 그림 그리기를 권유했다.

―이전에는 전혀 해보지 않았던 그림 공부를, 그것도 정상적이지 못한 손을 가지고 한다는 게 쉽지는 않았을 텐데요.

“이곳저곳 화실 문을 두드렸는데 아무도 받아주지 않았어요. 물감을 쓸 수 있는 양팔이 없다는 이유로.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먹물만 이용하는 사군자 그림은 가능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처제의 소개로 여태명 스승님을 만나 서예부터 시작했습니다. 스승님도 처음 찾아갔을 때는 고개를 저으시며 반신반의하셨지만 ‘내가 스스로 포기할 때까지만이라도 가르쳐 달라’고 해서 겨우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게 1988년이다. 붓으로 글씨를 쓰는 일은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갈고리로 붓을 잡으면 어깨 통증이 오고, 먹을 발로 갈아야 하기 때문에 발가락에 물집도 생기고 피가 터져 나왔다. 핏방울이 화선지에 뚝뚝 떨어지고 나서야 코피가 터진 것을 알아차린 것도 수십 차례. 그렇게 해서 서예에서 수묵화로, 그리고 서각과 크로키의 세계까지 작업 영역을 확장해나갔다. 그가 창안해낸, 먹물을 입힌 붓으로 크로키를 하는 수묵(서예) 크로키도 그런 노력의 결실이다.

―양팔을 가져간 하늘(운명)이 원망스럽지 않던가요? 왜 하필이면 나한테 이런 시련을 주는가 하는….

“사고 후 깨어나니까 울고불고 해야 할 아내가 양팔만 잃어서 천만다행이라고 덤덤히 말하니까 나도 별로 놀랍지 않더라고요. 아내가 말하고 숨쉬고 걸어 다니는 것 외에는 가족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저를 보고서 ‘경제적인 부분은 내가 해결할 테니 덤으로 사는 나머지 삶은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라’고 해준 말이 그렇게 위안이 될 수가 없었어요. 생각해보세요. 지극히 평범한 전기기사로 살던 제가 양팔을 내주지 않았다면 올림픽 무대에서 퍼포먼스를 할 수 있었겠어요? 저는 양팔 없는 예술 인생과 양팔 가진 평범한 직장인 중 하나를 택하라면 지금의 삶을 선택할 겁니다.”

기자는 이 대목에서 슬며시 ‘망신참법’이란 수련법을 꺼내들었다. 설명을 듣고 난 석 화백은 스스로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양팔을 내주고 얻는 득도의 세계에 공감하는 듯했다. “양팔을 걷어가 준 하나님(그는 교회에 다닌다)의 뜻은 분명히 작동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팔 없는 30년을 보내고 새로 시작하는 2015년을 맞아 그는 성경의 전 구절을 붓글씨로 표현하는 작업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가장 한국적인 것 중 하나인 한글을 ‘문자추상’이라는 예술세계로 끌어들이겠다는 의지이자, 새로운 구도자의 길을 찾아가고 있다는 뜻일 게다.

그의 구도자적 삶은 그가 직접 지은 ‘유빙(流氷)’이라는 호에서도 읽을 수 있다. 유빙은 바다 위에 떠돌아다니는 빙산을 보고 마음에 담은 것인데, 바다 위에서 유유자적하게 놀다가 어느새 모든 것을 포용하는 바닷물과 동화되는 삶을 살겠다는 뜻이란다. 자신의 체질에 맞게 절묘하게 지은 호다.

―동양의 역철학을 공부하지 않았는데도 30년 인연법을 온몸으로 느끼고 자신의 운명구조와 비슷한 호를 지은 것을 보면 도인인가 본데요.

“언젠가 저에게 서양의 누드크로키를 지도해준 김영자 선생님께서 피겨스케이팅을 하는 김연아 선수의 크로키를 보면서 ‘참 산에서 방금 내려온 사람 같네. 도통했어’ 하는 거예요. 크로키에 김연아의 신체가 펼쳐내는 아름다움과 생명력, 그리고 그녀의 내면세계까지 담겨 있다는 칭찬이었어요. 실제로 수묵(서예) 크로키를 하다보면 대상과 제가 일체가 되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또 그런 일치가 되지 않으면 작품이 잘 나오지 않아요.”

흥미로운 점은 그의 수묵 크로키에 등장하는 스포츠 선수들의 경우 기량이 절정기에 있을 때 자신의 작품 또한 걸작이 된다는 것.

2014년 3월 16일 소치 장애인겨울올림픽의 폐막식에서 석 화백은 4만여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올림픽 선수들의 역동적인 모습을 크로키로 담아내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그림을 그리면서 상대방의 현재 몸과 심리 상태까지 교감한다는 의미인가요?

“크로키를 하면서 스포츠 선수의 특징적인 동작을 잡아내기까지는 끝도 없는 관찰과 교감의 과정을 겪게 됩니다. 그들이 표현해내는 동영상을 한 컷씩 잡아내고 집중해 관찰하다보면 일반인들이 전혀 눈치 채지 못할 정도의 미세한 얼굴과 근육의 움직임, 고뇌와 고통, 기쁨과 환희 같은 심리상태 등이 그대로 제 몸속으로 파고 들어옵니다. 그리고 상대방의 동작과 선이 온전히 내 안에 들어왔을 때 저는 단숨에 그림으로 표현해냅니다. 제가 크로키를 하다보면 인생의 희로애락을 다 보는 것 같다고 말하는 이유이지요.”

그는 그러면서 거실 중앙에 놓여 있는 사이클 선수의 크로키를 가리키며 껄껄 웃었다. “저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아 떼어내고 다른 그림을 걸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더니, 어느새 그림이 ‘제발 조금만 더 걸려 있게 해주세요’하고 타협해오는 거예요. 그래서 며칠째 지금도 저렇게 걸려 있어요. 아무래도 자신이 신문에 소개될 것을 예감하고 내게 협상해온 것 같아요.” 그건 그만이 느낄 수 있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세계일 것이다. 여기서 환상인가 체험인가를 따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석 화백의 신체 장애를 극복한 ‘인생 스토리’는 우리나라 중학교 교과서 3종에 실릴 정도로 유명하다.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주는 그를 보고 강연과 방송 출연 요청 등이 지금도 끊임없이 이어진다.


▼“온몸의 氣를 다 쏟아넣어… 며칠씩 앓아눕기도”▼

석창우 화백의 수묵 크로키


석창우 화백은 수묵(서예) 크로키라는 독창적 화법을 창시한 화가이자 국내 최초의 의수화가이다.

수묵 크로키는 동양의 먹과 붓으로 서양의 누드크로키를 그리는 것으로 그가 고안해낸 새로운 장르이다. 이 기법은 짧은 시간에 고도의 집중력과 스피드를 필요로 한다. 그것을 정상적인 손이 아니라 의수로 해낸다는 점에서 석 화백의 존재가 빛난다.

장애 때문에 입이나 발로 그림을 그리는 구족화가는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입과 발의 감각을 잘 활용하면 정상인 못지않은 그림을 그릴 수 있다. 그러나 갈고리 손 같은 의수는 다르다. 감각을 전혀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치명적 단점을 피나는 노력으로 극복하고 석 화백은 갈고리 손의 감각만으로 종이의 앞면과 뒷면을 감지해내는 능력을 갖게 됐다.

석 화백은 공개된 장소에서 수묵 크로키 퍼포먼스를 하고 나면 집에 돌아와 드러눕는다고 한다. 온몸의 기를 작품에 쏟아 넣다 보면 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고, 며칠을 쉬면서 서서히 생기(生氣)를 회복하는 현상을 체험하게 된다는 것. 그의 작품은 살아 있는 생명 에너지인 셈이다.

사실 석 화백의 체험이 근거가 없는 건 아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권에선 그림에 생동하는 자연의 기운을 담고자 했고, 그것을 보는 이에게 그대로 전달하는 것을 최상으로 쳤다. 동양 예술사는 산수화는 좋은 땅 기운을 추구하는 풍수를 연원으로 한다고 설명한다. 말하자면 옛사람들은 그림을 단순한 감상용이 아니라, 그림의 기운까지 읽고 거기에 취하길 원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화가의 기 에너지가 담긴 작품은 그림을 감상하는 동시에 그 에너지를 느끼고 체험하는 것일 게다. 그래서 화가의 작품값은 그 기 에너지를 사는 대가이지 않을까 싶다. 과연 석 화백의 기 에너지는 얼마나 값어치가 나갈까. 궁금증이 뭉게구름처럼 피어올랐다.

안영배 전문기자 oj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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