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에 만난 사람]영화사가 영화학교 세운 이유는… “투자죠!”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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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필름 심재명 대표

심재명 명필름 대표가 지난달 29일 경기 파주출판단지에 새롭게 둥지를 튼 파주 신사옥 건물 앞에 섰다. 파주 이전을 ‘명필름의 4.0시대’라고 부르는 그는 “명필름의 성과를 그 공로자인 영화인과 관객에게 돌려주기 위해 학교와 아트센터를 세웠다”고 말했다. 파주=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심재명 명필름 대표가 지난달 29일 경기 파주출판단지에 새롭게 둥지를 튼 파주 신사옥 건물 앞에 섰다. 파주 이전을 ‘명필름의 4.0시대’라고 부르는 그는 “명필름의 성과를 그 공로자인 영화인과 관객에게 돌려주기 위해 학교와 아트센터를 세웠다”고 말했다. 파주=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4월 29일 오후, 경기 파주출판단지에서 마주한 영화제작사 ‘명필름’ 신사옥은 일단 위용이 엄청났다.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한 베이지색 건물은 지상 4층, 지하 2층에 연면적만 7941m²(약 2400평). 심재명 대표(52)는 “일을 진행하며 조금씩 욕심내다 보니 사이즈가 커졌다”며 “사재도 출연했지만 상당 부분 은행 빚”이라며 웃었다.

전체 식구가 17명뿐인 명필름을 위한 공간이라면 말도 안 되는 규모. 실은 올해 창립 20주년을 맞아 명필름은 파주사옥을 바탕으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영화인재를 양성하는 ‘명필름영화학교’와 시민들에게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제공하는 ‘명필름아트센터’를 만든 것. 30일은 학교 및 센터의 개관식이 열리는 날이기도 했다. 강산이 두 번 바뀔 동안 한국 영화계를 지켜온 명필름. 영화 제작도 바쁠 텐데 심 대표는 또 어떤 꿈을 꾸고 있는 걸까.

―영화사가 학교와 문화센터를 세운 건 처음입니다.

“2010년 15주년 행사 때 나온 아이디어였어요. (남편인) 이은 명필름 공동 대표가 ‘명필름의 성과는 한두 사람의 공이 아니라 모든 한국 영화인과 관객 덕분’이라며 이를 함께 공유할 길을 찾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때부터 문화재단 설립 등 구체적인 방법을 고민했죠. 열정만으로 시작해 20년 동안 쌓은 노하우를 새로운 인재에게 전하는 건 학교가 제격이라고 봤습니다. 아울러 영화는 관객 없이 존재할 수 없는 문화산업이잖아요. 시민들이 즐길 수 있는 영화관과 공연장, 전시장을 갖춘 문화센터도 자연스럽게 떠올랐어요.”

―그게 마음먹는다고 되는 사업은 아니잖습니까.

“영화와 동떨어진 분야였다면 쉽지 않았겠죠. 하지만 학교나 센터 모두 한국 영화계를 더 풍성하게 만들 수 있다는 취지에 많은 분들이 공감하고 동참해줬습니다. 승 건축가도 단순한 건물이 아닌 ‘도시 속의 영화도시’를 세운다는 심정을 담았다고 얘기하더군요. 우리가 사랑하는 영화를 통한 상생을 꿈꿨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어요. 명필름은 창립 때부터 가장 중요시 여긴 덕목이 ‘항상성(恒常性)’이었습니다. 늘 초심을 유지하면서 꾸준히 한발씩 내딛는 거죠. 이 대표랑 농담 삼아 파주 이전을 ‘명필름 4.0의 출발’이라고 불렀어요. 파격적인 변화가 아니라 지금껏 해온 일의 연장선에 있는 겁니다.”

―4.0이란 표현이 인상적인데, 명필름의 1∼3기는 어떤 20년이었나요.

“1995년 창립하고 ‘코르셋’을 시작으로 다양한 작품을 내놓았던 2003년까지가 1기라 할 수 있죠. 영화 마케터로 일하다 이 대표와 결혼하며 영화사를 차렸는데, 운이 따랐는지 성과도 나쁘지 않았고요. 2004∼2007년이 2기입니다. 강제규필름과 합병해 투자배급사 ‘MK픽쳐스’를 만들었죠. 돌아보면 그땐 제작을 넘어 다양한 비즈니스를 모색했던 시기였어요. 이후 ‘서촌 시절’이 3기입니다. 벌였던 일들을 정리하고 다시 영화 제작이란 본업에 충실했죠.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부터 현재 상영 중인 ‘화장’까지. 말하고 보니 꽤 거창한데요. 그저 영화가 좋아서 일하다 보니 자연스레 지금까지 이어진 겁니다.”

―우문(愚問)이지만 어떤 작품이 기억에 남으십니까.

“뻔한 대답이지만 우리에게 작품은 자식입니다.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있나요. 이래저래 관여한 작품이 모두 36편인데요. ‘공동경비구역 JSA’ ‘마당을 나온 암탉’ ‘건축학개론’…. 다 추억도 다르고 기억도 다릅니다. 아쉬운 작품이라면 역시 첫 영화였던 ‘코르셋’이겠네요. 경험이 일천하다 보니 모든 게 부족했습니다. 감독은 물론이고 배우, 스태프 모두에게 미안했습니다. 꼭 집어 말하긴 어렵지만 작품이 작품성과 상업성 모두 반응이 약할 때가 제일 속상하죠.”

―최근작인 ‘카트’ ‘화장’은 평단의 호평을 받았지만 흥행은 아쉬웠습니다.

“일단 제작자로선 참여한 분들에게 제대로 된 성과를 돌려주지 못해 죄송할 따름입니다. ‘카트’(약 81만 명)는 좀 의아한 부분도 있어요. 첫 주에 42만 명이 들었는데 갑자기 관객이 뚝 떨어졌어요. 보통 첫 주 관객의 3배 이상은 드는 게 영화계 통념이거든요. 많은 영화계 분들도 대기업 위주의 시장구조에 짓눌렸단 의구심을 가지더군요. 그런 걸 떠나서 최근에 너무 영화적 가치, 주제의식 이런 거에 경도됐던 건 아닌지 스스로 반성하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제작자는 상업성을 더욱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는 입장이니까요.”

이 대목은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명필름은 2013년 케이퍼필름(대표작 ‘도둑들’), 주피터필름(‘관상’) 등 9개 제작사와 함께 투자배급사 ‘리틀빅픽쳐스’를 세웠다. 기존 대기업 중심의 배급구조를 개선하자는 취지. 그런데 내놓는 작품마다 작품성과 별개로 흥행에 쓴맛을 봤다. 특히 지난해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삼거리픽쳐스)은 독과점 시장구조에 피해를 입었단 논란의 중심에 섰다. ‘카트’와 ‘화장’ 역시 리틀빅픽쳐스가 배급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이 또 명필름의 색깔이잖습니까.

“물론이죠. 반성한다는 게 뜯어고친단 뜻은 아니죠. 명필름은 첨부터 청개구리 같은 면이 있었어요. ‘카트’ 제작도 주변에선 말리는 이가 적지 않았죠. 하지만 선입견 때문에 좋은 작품을 외면하고 싶진 않았습니다. ‘바람난 가족’은 완성될 때까지도 투자를 못 받았어요. 여기저기 돈 꿔서 겨우 맞췄죠. 영화 제작이란 게 그런 신념이 없으면 버틸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현실을 도외시한단 뜻은 아닙니다. 다만 상업성과 작품성 사이에서 중심을 잘 잡으려 노력해왔어요.”

―20년 전과 지금은 영화계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대기업의 유입이 가장 큰 요인이었죠. 장단점이 극명하게 갈렸어요. 분명 영화산업 규모가 커지고 제작환경도 효율적으로 나아졌습니다. 투명해진 점도 긍정적이고요. 그런데 철저하게 돈의 논리로만 움직입니다. 명필름 초기엔 영화라는 콘텐츠를 만드는 이들에 대한 존중이 컸습니다. 지금은 투자 마인드만 활개를 칩니다. 질적으론 하향 평준화됐단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스크린 독과점과 같은 지적은 몇 년째 지속되는데 딱히 나아지질 않습니다.

“어벤져스를 보세요. 상영횟수 점유율이 70∼80%에 이릅니다. 멀티플렉스에 관이 몇 개인데 모두 같은 영화를 걸고 있어요. 갈수록 자본의 논리가 더 기세등등해지고 있습니다. 이건 결코 바람직하지 않죠. 해결방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정부가 나서 법적인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영화계는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쉽진 않을 거예요. 다만 최근 리틀빅픽쳐스를 비롯해 대안 배급사들이 생겨나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라고 봅니다.”

―명필름 20주년인데 너무 거대담론만 물어봤네요.

“하하, 그러게요. 근데 따지고 보면 우리만 축하할 건 아닙니다. 부산국제영화제랑 영화사 ‘씨네2000’도 동갑내기예요. 강우석 감독의 ‘시네마서비스’도 지난해 20주년이었을 겁니다.(공식적으론 1995년 설립해 올해 20주년이다.) 당시 영화계엔 재능 있는 인력들이 쏟아지던 시절이었죠. 명필름도 그중 하나일 뿐이에요. 앞으로가 더 문제겠죠. 솔직히 말할까요. 명필름에 학교나 아트센터 설립은 대단한 사회 환원이 아닙니다. 영화계를 더 풍성하게 만들어야 우리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일종의 투자인 셈이죠. 영화로 일군 터전을 바탕으로 영화를 통해 공존을 지향하는 거라고나 할까요. 영화는 여전히 우리에게 꿈이니까요.”

170석의 영화관, 250석의 다목적 공연장, 전시장, 북카페 등을 갖춘 명필름아트센터와 영화인 양성을 위한 명필름영화학교. 명필름 제공
170석의 영화관, 250석의 다목적 공연장, 전시장, 북카페 등을 갖춘 명필름아트센터와 영화인 양성을 위한 명필름영화학교. 명필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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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필름영화학교와 아트센터는

4월 30일 경기 파주시 회동길 명필름 사옥에서 개관식을 가진 ‘명필름아트센터’와 ‘명필름영화학교’는 영화를 매개로 한 복합영상문화공간이라 부를 수 있다. 올해 창립 20주년을 맞은 영화제작사 명필름이 파주출판도시 속 ‘영화도시’를 모토로 시민들에게 다양한 즐길거리를 제공한다.

아트센터는 영화관과 공연장, 예술전시장으로 구성됐다. 지하 1층 영화관은 170석 소규모이긴 하나 디지털4K 영사시스템과 돌비 애트모스 3차원(3D) 사운드 시스템을 도입했다. 개관 기념으로 1일부터 20일까지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을 하루 2회(오전 10시 반, 오후 1시 반) 무료 상영한다. 임권택 감독의 102번째 영화 ‘화장’도 교차 상영하며, 21일 개봉작 ‘산다’도 상영할 계획이다.

지상 2, 3층에는 250석 규모의 다목적 공연장이 들어섰다. 뮤지컬, 콘서트는 물론이고 강연이나 파티도 열 수 있다. 명필름이 첫 번째로 제작하는 뮤지컬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7월에 선보일 예정이다. 4층 전시장 ‘아트랩’은 재능 있는 작가들의 전시공간으로 쓰인다. 1일부터 새로운 가구를 체험하는 ‘조립식: 레이어 세트 플레이’와 영상과 음악의 교차점을 구현한 ‘크로싱 웨이브스(Crossing Waves)’ 전시회를 만날 수 있다. 1층엔 영화 건축 디자인 전문서적을 구비한 북 카페도 마련했다.

‘의식과 재능을 겸비한 참다운 영화인재 양성’을 기치로 내건 명필름영화학교는 현재 1기생 10명 선발을 마친 상태다. 해마다 △극영화 연출(2명) △다큐멘터리 연출(1명) △제작(1명) △연기(2명) △미술·촬영·편집·사운드(각 1명) 부문을 모집한다. 교육 기간은 2년으로 다양한 영화이론 및 인문 교육과 제작수업을 병행한다. 정지영(‘부러진 화살’) 이준익(‘왕의 남자’) 이용주 감독(‘건축학개론’), 이은 대표, 배우 문소리 등이 객원교수로 참여한다. 작품 제작비는 물론이고 학비와 기숙사를 포함한 숙식을 무상으로 제공한다. 내년 2기생은 올해 10월 5∼12일 입학원서를 접수한다. 명필름문화재단 홈페이지(www.myungfilm.org) 참고.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명필름#심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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