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수학 학원 잊고 ‘놀고 싶어’ 모였죠”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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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마음을 담은 동요를 부르는 ‘리틀뮤즈’ 구성원들. 왼쪽부터 위쪽은 김지호(9), 박시아 양(9), 아래쪽은 이다민(9), 이예은(8), 백민지 양(9). 리틀뮤즈 제공
아이들의 마음을 담은 동요를 부르는 ‘리틀뮤즈’ 구성원들. 왼쪽부터 위쪽은 김지호(9), 박시아 양(9), 아래쪽은 이다민(9), 이예은(8), 백민지 양(9). 리틀뮤즈 제공
“빨리빨리 해. 학원 늦어!”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서 자주 들리는 이야기다. 초등학교 저학년생들이 부모 차나 셔틀버스를 타고 하루에 최소 두세 곳의 학원을 오가며 하는 얘기였다. 부모나 아이 모두 표정이 없었다. 아이들에게 뭔가를 물어보면 대답은 이랬다. “엄마에게 물어보세요.”

청담동에 사는 주부 황지효 씨(42)도 한때는 이런 전형적인 ‘강남 학부모’였다. 그는 딸 박시아 양(9)을 3, 4세부터 학원에 보내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아이를 학원에 많이 보내니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엔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 학부모들은 친한 사이라도 학원 정보를 공유하지 않았다. 학교나 학원에서 아이에게 상을 주면 주변 학부모들의 질투를 받기 십상이었다. 심지어 “왜 그 아이에게만 줬냐”고 항의하는 부모도 있었다. 이 때문에 사설학원은 상장을 줄 때도 공개적으로 주지 않고 몰래 가방에 넣어줬다.

묵묵히 학원을 오가던 아이는 6세쯤 되자 “난 놀고 싶은데 왜 이렇게 학원을 다녀야 하느냐”고 물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엔 짜증이 늘었고, 표정도 어두워졌다. 밤 12시가 다 돼서까지 숙제를 하고 낮에는 꾸벅꾸벅 졸기도 했다. 딸뿐 아니라 황 씨의 정서도 메말라 갔다.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 끝에 초등 1학년생인 아이를 불렀다. 다니는 학원의 개수를 A4 용지에 적어보자고 했다. 영어 수학 논술 미술 스피치 발레…. 13개였다. “이 중에 네가 정말 다니고 싶은 것만 동그라미를 쳐 보라”고 했다. 미술 무용 영어 3개만 남았다.

황 씨는 10개 학원을 모두 끊게 한 뒤 곰곰이 생각했다. ‘아이가 좋아하는 게 뭘까?’ 그때쯤 딸의 초등학교 학예회에 참석했다. 아이들은 ‘에이핑크’ 등 댄스그룹의 가요에 열광하고 있었다.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황 씨는 20대에 작사가로 일한 경험이 있었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건전한 동요를 만들어 즐길 수 있게 하자고 생각했다.

주변 학부모들에게 취지를 설명하고 함께할 아이를 수소문했다. 모인 아이는 총 5명. 황 씨는 지난해 1월 ‘뮤즈 오디세이’라는 회사를 세우고 ‘리틀 뮤즈’라는 동요그룹을 만들었다.

황 씨는 평소 아이들이 흥얼거리던 말을 토대로 ‘놀고 싶어요’라는 노래 가사를 지었다.

‘해질녘 혼자 집에 오는 길, 매일 날 기다리는 학원 버스/영어 수학 엄마 잔소리 잠시 잊고 싶어요/가슴속 깊은 곳의 외침을, 마음속 깊은 곳에 꿈의 소리/진정 원하는 게 무언지 이젠 들어주세요. 우린 놀고 싶어요….’

아이들은 매주 한 번씩 모여 노래와 춤을 연습했다. 표정도 밝아졌고, 모일 때마다 웃음과 수다가 끊이지 않는다. 스스로 즐겁게 공부를 하면서 성적도 오히려 조금 올랐다.

리틀 뮤즈는 정식으로 가수 데뷔를 한 것도 아니고, 음반 수익이 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즐겁게 노래하며 지난해 1, 2집을 내고 현재 3집 준비를 하고 있다. 황 씨는 “노래를 듣고 우는 아이도 많았다. 아이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곡을 만들어서 뿌듯하다”고 말했다.

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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