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치마가 잘 어울리는 염추기경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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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년전 국내 첫 노숙인 무료급식소 열어
29일 설 앞두고 ‘토마스의 집’ 찾아 배식

29일 서울 영등포의 무료 급식소 ‘토마스의 집’에서 만난 염수정 추기경(오른쪽)과 90세의 고령에도 자원봉사자로 활동 중인 정희일 할머니가 손을 맞잡으며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제공
29일 서울 영등포의 무료 급식소 ‘토마스의 집’에서 만난 염수정 추기경(오른쪽)과 90세의 고령에도 자원봉사자로 활동 중인 정희일 할머니가 손을 맞잡으며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제공
“추기경님이 나를 기억하실지 몰랐어요.”(정희일 할머니·90)

“(먼저) 천국 가시면 나 좀 잘 봐주세요.(웃음)”(염수정 추기경)

설날 연휴를 앞둔 29일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의 노숙인을 위한 무료 급식소 ‘토마스의 집’(대표 김종국 신부)을 찾은 염 추기경이 뜻밖의 만남을 가졌다. 28년 전부터 이곳에서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는 정 할머니와 다시 만난 것. 정 할머니는 염 추기경이 자신을 알아보자 놀라며 “추기경님이 오신다기에 이게 무슨 일인가 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염 추기경은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느냐. 할머니 뵈면서 많이 배웠다. 할머니께서 착하게 살고 계시니 아름답고 예쁘신 것 같다. 사람들이 말하는 웰빙이 따로 필요 없다”고 했다.

염 추기경은 이날 토마스의 집에서 앞치마를 두른 채 노숙인들에게 무료 배식을 했다. 한 여성 자원봉사자가 “저보다 잘하신다”고 하자 염 추기경은 “70년을 (혼자) 먹고 살았는데 당연하다”며 웃었다.

염 추기경과 영등포 노숙인들의 인연은 1986년으로 거슬러간다. 서울대교구에 따르면 당시 영등포 본당 주임신부였던 염 추기경은 국내 최초의 노숙인 무료 급식소를 열었다. 그해 겨울 영등포시장 부근에서 한 노숙인이 아궁이를 껴안은 채 얼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 것이 계기가 됐다. 염 추기경은 파출소에 연락해 시신을 수습한 뒤 주변 성당과 가톨릭 단체와 힘을 합쳐 무료 급식소를 시작한 것. 소식이 알려지면서 서울역과 용산 일대 노숙인들이 밥을 먹으러 오고, 고 김수환 추기경도 성금을 보내 그 돈으로 고기반찬을 제공하기도 했다. 이 시설은 ‘사랑의 선교 수사회’가 관리하다 1993년부터 ‘토마스의 집’이 운영하고 있다.

염 추기경은 토마스의 집에 이어 인근 무료 진료소 ‘요셉의원’(원장 이문주 신부)을 찾아 떡을 나눠 주고 노숙인 환자, 자원봉사자와 대화를 나눴다. 염 추기경은 봉사자들에게 “여러분은 천국 가실 것”이라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봉사하셔서 그런지 다들 얼굴이 너무 환하고 아름답다”고 말했다. 염 추기경은 추기경 서임 뒤 첫 사목 활동으로 19일 서울 은평구 구산동 노숙인 요양시설 ‘은평의 마을’에서 미사를 올리기도 했다.

염 추기경은 이날 행사 뒤 3년간의 영등포성당 주임신부 시절을 떠올리며 “이 지역은 마음의 고향 같은 장소의 하나”라며 “노숙인들이 추워진 날씨 때문에 더 어렵게 지내지 않는지 살펴보기 위해 꼭 오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염수정 추기경#토마스의 집#자원봉사#무료급식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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