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연휴를 앞둔 29일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의 노숙인을 위한 무료 급식소 ‘토마스의 집’(대표 김종국 신부)을 찾은 염 추기경이 뜻밖의 만남을 가졌다. 28년 전부터 이곳에서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는 정 할머니와 다시 만난 것. 정 할머니는 염 추기경이 자신을 알아보자 놀라며 “추기경님이 오신다기에 이게 무슨 일인가 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염 추기경은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느냐. 할머니 뵈면서 많이 배웠다. 할머니께서 착하게 살고 계시니 아름답고 예쁘신 것 같다. 사람들이 말하는 웰빙이 따로 필요 없다”고 했다.
염 추기경은 이날 토마스의 집에서 앞치마를 두른 채 노숙인들에게 무료 배식을 했다. 한 여성 자원봉사자가 “저보다 잘하신다”고 하자 염 추기경은 “70년을 (혼자) 먹고 살았는데 당연하다”며 웃었다.
염 추기경과 영등포 노숙인들의 인연은 1986년으로 거슬러간다. 서울대교구에 따르면 당시 영등포 본당 주임신부였던 염 추기경은 국내 최초의 노숙인 무료 급식소를 열었다. 그해 겨울 영등포시장 부근에서 한 노숙인이 아궁이를 껴안은 채 얼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 것이 계기가 됐다. 염 추기경은 파출소에 연락해 시신을 수습한 뒤 주변 성당과 가톨릭 단체와 힘을 합쳐 무료 급식소를 시작한 것. 소식이 알려지면서 서울역과 용산 일대 노숙인들이 밥을 먹으러 오고, 고 김수환 추기경도 성금을 보내 그 돈으로 고기반찬을 제공하기도 했다. 이 시설은 ‘사랑의 선교 수사회’가 관리하다 1993년부터 ‘토마스의 집’이 운영하고 있다.
염 추기경은 토마스의 집에 이어 인근 무료 진료소 ‘요셉의원’(원장 이문주 신부)을 찾아 떡을 나눠 주고 노숙인 환자, 자원봉사자와 대화를 나눴다. 염 추기경은 봉사자들에게 “여러분은 천국 가실 것”이라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봉사하셔서 그런지 다들 얼굴이 너무 환하고 아름답다”고 말했다. 염 추기경은 추기경 서임 뒤 첫 사목 활동으로 19일 서울 은평구 구산동 노숙인 요양시설 ‘은평의 마을’에서 미사를 올리기도 했다.
염 추기경은 이날 행사 뒤 3년간의 영등포성당 주임신부 시절을 떠올리며 “이 지역은 마음의 고향 같은 장소의 하나”라며 “노숙인들이 추워진 날씨 때문에 더 어렵게 지내지 않는지 살펴보기 위해 꼭 오고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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