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세 한의사, 대구 흥생한의원 조경제 원장 ‘60년 仁術’ 책으로

  • 동아일보

“매일 새벽 4시부터 진료준비”

“배가 고파 어머니께서 싸주신 도시락 뚜껑을 열어 먹으려고 하니 엄동설한 혹한이라 밥과 반찬이 얼어붙어서 젓가락이 들어가지 않았다…나는 확실히 믿는다. 성공의 비결은 열심히 부지런히 일하는 것이며 온 정성을 기울여 노력하면 일제의 압박이나 어떠한 고난도 이기리라는 것을.”(28쪽)

대구에서 ‘성서 조약국’으로 불리는 흥생한의원(달서구 감삼동) 조경제 원장(90·사진)이 ‘성서 조약국, 흥생한의원 이야기’를 최근 펴냈다. 276쪽 책에 300여 장의 사진과 함께 부모님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 8남매를 키우며 60년째 진료하는 자세, 더불어 사는 인술(仁術)의 마음 등을 한 편의 드라마처럼 담았다.

조 원장은 32세에 한의원을 개원한 이후 지금까지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일기를 써왔다. 가난하더라도 성실하고 정직하게 노력하라는 조부모와 부모의 가르침을 어기지 않도록 다짐하기 위해서다. 그는 “한겨울에 땔감을 마련하느라 지게를 짊어지고 험한 산길을 다니던 기억이 생생하다”며 “지금 생활이 평온하다고 해서 어려웠던 시절을 잊으면 교만해지기 쉽다”고 했다. 집 한쪽에 작은 전시관을 만들어 조부모와 부모, 자신이 쓰던 물건 수천 점을 버리지 않고 모아 둔 것도 이 때문이다.

주경야독으로 1954년 한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한 그는 지금까지 60년 가까이 매일 오전 4시면 일어나 경건한 마음으로 진료를 준비한다. 새벽에 부모님 영정 앞에 향을 피우고 “오늘도 성실하게 진료하고 노력하겠다”고 다짐하는 것도 50년가량 이어오는 소중한 일과다. 1970년대에는 경북한의사회장을 맡았고 프랑스에서 열린 세계침구학술대회에는 한국 대표로 참가하기도 했다.

자신은 종이 한 장도 함부로 버리지 않고 고무신을 신을 정도로 평생 절약하는 생활을 하지만 더불어 사는 마음은 넘친다. 30년 전 동네 노인을 위해 큰 경로당을 지어줬으며 장학회를 만들어 매년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다. 1995년에는 케이블TV ㈜푸른방송을, 2000년에는 달서구문화원을 설립해 다양한 문화행사를 열고 있다. ‘인술’과 ‘화목’은 진료실이나 집에서만 하는 게 아니라는 신념에서다. 조 원장은 “90년 삶이 훌쩍 지난 듯하지만 세상에 있는 동안 흐트러지지 않고 날마다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대구=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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