雪山조난 48시간… “한국 군대경험이 날 살렸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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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6세 재미교포 김용춘씨 극적 생환… 美언론 대서특필

군 복무시절의 경험과 부인을 향한 그리움이 혹한의 산에서 그를 구했다. 얼어가는 그의 몸을 마지막으로 덥혀준 것은 지갑에 든 6달러였다. 미국 산에서 조난당했다가 48시간 만에 극적으로 구조된 한 재미교포의 생환기(生還記)가 미국 사회에서 큰 화제가 되고 있다.

17일 워싱턴포스트 등 미 주요 언론은 워싱턴 주 타코마에 사는 김용춘 씨(66)의 이야기를 상세히 전했다. 그는 토요일인 14일 오전 산악클럽 회원들과 함께 시애틀 인근에 위치한 레이니어 국립공원 내 레이니어 산에 올랐다가 산비탈에서 미끄러지면서 길을 잃어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날씨에 눈보라와 무릎까지 빠지는 눈 속에 고립됐다.

“하지만 전혀 두렵지 않았다”고 김 씨는 구조 후 시애틀 지역채널 코모TV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우선 큰 바위 밑에 겨우 서 있을 정도의 굴을 팠다. 하지만 영하의 추위는 토굴로도 견뎌낼 수 없었다. 갖고 온 소지품을 모두 꺼냈다. 양말, 밴드, 칫솔을 하나씩 라이터로 태워 추위를 견뎠다. 모든 소지품이 떨어진 뒤 지갑에는 1달러와 5달러짜리 한 장씩이 남았다. 6달러는 그가 태운 마지막 소지품이었다. 그러고 나서 ‘졸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낮에 계속 걸었다. 다행히 배낭 안에는 소량의 쌀과 한국 반찬, 그리고 초콜릿 바가 있었다. 모든 것이 떨어진 뒤 그를 지탱시킨 것은 “아내와 뜨거운 (한국식) 목욕탕에 대한 그리움이었다”고 한다. 가족들의 사진을 꺼내 마지막 시간을 견뎠다.

구조대원이 도착한 것은 이틀 후인 16일 오전. 고립된 뒤 가장 걱정되었던 것이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국립공원에서는 라이터를 사용하면 안 되는데’ 하고 걱정했다”며 “한국 군 복무시절에 베트남전에 참전해 극한의 상황에서 생존법을 배운 게 무사귀환에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김 씨는 건강상태가 양호해 곧바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레이니어 산은 이달 초 한 이라크 참전용사가 국립공원 구조대원을 총기로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 일시폐쇄됐다가 9일 재개장했다. 한때 암 투병을 하기도 했다는 김 씨는 “앞으로도 매주 토요일 산에 오를 것이다. 하지만 날씨가 좋지 않으면 절대 오르지 않겠다”며 “산을 사랑하게 된 것은 건강을 회복하게 해준 가장 좋은 약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뉴욕=박현진 특파원 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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