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KTX 승강장에서 공연된 호주 극단 백투백시어터의 ‘작은 금속 물체’에 출연해 자연스러운 연기를 펼친 지적장애인 배우들. 대본 암기력이 뛰어난 스티븐 역의 사이먼 라허티 씨(왼쪽)와 여성이면서 남성 역을 훌륭하게 소화한 게리 역의 소냐 테우벤 씨.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16일 오후 4시경 서울역 KTX 승강장 3층에서 2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80여 명이 헤드폰을 낀 채 앉아있다. 바삐 오르내리는 인파를 지켜본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에 초청된 호주 지적장애인 극단 ‘백투백 시어터’의 공연 ‘작은 금속 물체’를 보러 온 관객들이다.
헤드폰에서는 영어 대사와 한국어로 번역한 대사가 흘러나온다. 오가는 승객들이 낯선 모습의 관객들을 힐끔거린다. 이윽고 체육복 바지에 허름한 잠바를 입고 무선마이크를 착용한 배우 2명이 모습을 보였다. 게리 역의 소냐 테우벤 씨(38)와 스티븐 역의 사이먼 라허티 씨(30)다.
두 사람은 지적장애인. 가끔 공연장인 기차역에서 길을 잃어 스태프가 찾아 나서야 한다. 하지만 둘이 대사를 주고받는 솜씨는 보통이 아니었다. 서로 좋아하는 것에 대해 다소 어눌하지만 거침없는 대화를 주고받았다.
여자 친구가 없어 자신이 동성애자인지 고민하는 스티븐에게 게리가 파트너를 소개해 준다고 말한다. 그 순간 게리의 휴대전화 벨이 울리고, 앨런이란 사내가 “3000달러를 주겠다”면서 은밀한 거래를 제안한다.
연극은 진정한 인간관계를 모색하는 두 지적장애인과 돈(작은 금속 물체=동전)만 생각하는 비장애인의 삶을 대비시키면서 ‘누가 더 온전한 인간인가’를 묻는다. 50여 분 동안 두 배우는 놀라운 집중력과 자연스러운 연기력을 보여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이 작품은 2005년 초연 이후 30여 개국에 초청됐다. 바쁜 인파 사이에서 볼품없는 두 지적장애인이 불러일으키는 ‘시적 감동’이 찬사를 받아왔다.
관객 박샘이 씨(25)는 “장애인이지만 지극히 절제된 연기로 감정을 전달하는 데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가을 석양 아래 세상과 소통하고 싶어 하는 그들의 인간적 외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테우벤 씨는 대사 암기에만 하루 9시간씩 한 달 이상이 필요하지만 여자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완벽하게 뒷골목에서 자란 남성 배역을 소화해냈다. 스티븐 역의 라허티 씨는 한번만 읽고도 대본을 다 외울 수 있지만 이를 연기로 풀어내기 위해 역시 비장애인보다 훨씬 더 많은 연습시간이 필요하다. 두 사람은 대본 작업에도 참여했다.
프로듀서인 앨리스 내시 씨는 “1987년 창립된 백투백시어터는 장애인 문제를 다루는 데만 머물지 않고 사회 경제적 문제에 대한 지적 성찰을 담는다”고 소개했다.
이날 오후 7시 공연을 끝으로 서울역에서 사흘간 5회 공연을 마친 배우들은 17일 호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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