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출신 웬디 후엔 씨(왼쪽)와 필리핀에서 온 마리셀 씨가 할머니들의 손을 마사지하고 있다. 이들은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마사지 기술을 배웠다. 삼성사회봉사단 제공
스무 명 남짓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목청껏 소리를 높였다. “마-간-당 오-마-가!”
1일 전북 김제시 검산동 김제사회복지관. 3년 전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마닐린 씨(23)가 다른 필리핀 이주 여성들과 함께 동네 어르신들에게 모국의 인사말을 소개하는 참이었다. “‘안녕하세요’를 필리핀 말로 ‘마간당 오마가’라고 합니다. 이주 여성들을 만날 때 이렇게 인사해 주시면 정말 반갑고 고맙겠습니다.”
이 필리핀 여성들은 결혼 이민자로 구성된 자원봉사단체 ‘다누리 봉사단’에 속해 있다. 다누리 봉사단은 삼성그룹과 전국다문화가족사업지원단,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지원을 받아 대구, 익산, 김제, 영천, 문경, 함안 등 전국 8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180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 이주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대부분의 사회공헌활동이 한국어 교육 등 ‘주는’ 쪽에 무게를 둔 반면 삼성은 이들을 봉사의 장으로 불러들이자는 ‘역발상’을 했다.
이날 웬디 후엔 씨(24)를 비롯한 베트남 결혼이민 여성들은 어르신들에게 베트남 음식인 ‘고이꾸온’ 만드는 법을 선보였다. 물에 불린 라이스페이퍼에 갖가지 야채, 고기 등을 싸 먹는 것으로 흔히 ‘월남쌈’이라 부르는 요리다. 이어 이주 여성들이 미리 준비한 베트남 튀김만두 ‘차넴’과 필리핀 튀김만두인 ‘럼삐아’를 다 같이 시식했다. 할머니들이 “만두가 참 맛있다. 입에 잘 맞는다”고 칭찬하자 이들은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강의실 한쪽에서는 마사지 기술을 배운 이주 여성들이 할머니들의 주름진 손을 정성껏 마사지했고, 다른 쪽에서는 어르신들과 색종이로 중국 부적을 만들었다.
강의실에서 만난 임순자 씨(68)는 “외국서 결혼하러 온 사람들이 많다고만 여겼는데 직접 만나 보니 딸 같다는 생각이 든다”며 “필리핀 이주 여성들을 만나면 꼭 ‘마간당 오마가’라고 인사해 보겠다”고 말했다. 필리핀, 베트남 출신 며느리를 둘이나 맞은 김옥진 씨(74)는 “오늘 인사말과 문화, 음식을 배운 덕에 며느리들을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이주 여성들에게 한국에서의 봉사활동은 틀을 깨고 나서는, 의미 있는 도전이다. 후엔 씨는 “베트남에서 왔다고 하니까 몇몇 한국 사람이 ‘도움만 받는다’며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았는데 큰일은 아니지만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베트남 문화를 알리고 작은 도움도 드릴 수 있어 뿌듯하다”고 말했다. 마닐린 씨도 “한국에 와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울적했는데 봉사활동을 하면서 내가 소중하고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며 활짝 웃었다.
장인성 삼성사회봉사단 상무는 “평소 봉사의 수혜자로만 여겨지던 이주 여성들이 어려운 이웃을 위한 봉사활동에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당당히 참여하면서 자존감을 회복하고 가족들과 사이도 더 좋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 정책본부에 따르면 5월 말 현재 국내 결혼이민자는 14만4000여 명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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