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선생 빈소 함박눈 뚫고 추모의 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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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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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후배 문인들에게 부의금 받지 말라”

22일 별세한 소설가 박완서 씨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는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22일 별세한 소설가 박완서 씨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는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부의금은 정중히 사양하겠습니다.’

고인은 생전에 “내가 죽거든 가난한 후배 문인들에게 부의금을 받지 말아 달라”는 말을 남겼다. 이에 따라 박완서 씨의 유족들은 삼성서울병원 빈소에 작은 안내문을 걸어두었다.

고인의 바람대로 조의금을 주고받는 번잡함은 없었지만 조문객들의 행렬은 끊이지 않았다. 22일 선후배와 동료 문인들이 밤늦도록 자리를 지킨 데 이어 23일에도 폭설을 뚫고 조문객들이 빈소를 찾았다.

23일 빈소를 찾은 평론가 김병익 씨는 “그가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됐을 때 내가 처음으로 인터뷰해 기사를 썼던 기억이 난다”면서 “한국 근대사의 굴곡을 처녀로, 부인으로, 어머니로 겪으면서 그것을 글로 옮긴 것”이라고 평가했다. 황동규 시인은 “사소한 것 하나라도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그런 정직함과 철저함이 오롯한 분이었다”고 고인을 추모했다.

앞서 22일 빈소를 찾은 평론가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는 “(작품을) 읽지 않고는 그의 소설의 독특함을 알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다”면서 “글이 남아 있지 않느냐, 문인은 죽어도 죽지 않는 존재”라고 말했다. 소설가 윤대녕 씨는 “대모 같은 분이셨고 정말 한순간도 쉬지 않고 책을 쓰셨는데… 문학이 앞으로 어떤 빛을 보고 지향할지 막막한 느낌”이라며 안타까워했다. 평론가 유종호 연세대 석좌교수는 “지난해 고인이 책을 출간했을 때 저녁식사에 초대해 주셔서 1월 말에 답례 대접하겠다고 했는데 그것도 안 받으시고 돌아가셔서…”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빈소에는 시인 김지하 김용택 씨, 소설가 박범신 이승우 은희경 성석제 김인숙 김연수 강영숙 씨, 평론가 김병익 김화영 씨, 이해인 수녀와 가수 김창완 씨, 배우 윤여정 씨, 현대문학 양숙진 대표, 문학동네 강태형 대표 등이 방문해 애도의 뜻을 표했다.

소설가 이문열 씨는 23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2001년 ‘책 장례식’ 사건(이문열 씨의 거주지인 경기 이천시 부악문원에서 벌어졌던 일부 시민단체의 책 반환 행사) 때 고인이 통탄했던 것을 떠올리면서 “감동스럽고 고마웠는데 갑작스럽게 떠나시니 황망할 따름”이라고 전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은 “우리나라의 대표작가일 뿐 아니라 가톨릭 신앙인으로서도 훌륭한 모범을 보인 분”이라고 추모했다. 고인은 남편, 외아들과 연이어 사별하고 가톨릭에 귀의했다.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직원들은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활동했던 고인에 대해 “작가로서의 명성 못지않은 선생님의 고귀한 이상을 볼 수 있는 기회였다. 말년을 봉사활동에 바친 고 오드리 헵번의 모습을 발견했다”는 추도사를 발표했다. 고인과 함께 친선대사로 활동한 영화배우 안성기 씨는 “에티오피아에 함께 갔을 때 굶주린 아이들을 본 뒤 식사조차 못 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며 슬퍼했다.

트위터에도 추모의 글이 이어졌다. 장은수 민음사 대표는 “아름다운 문장과 뜨거운 감성으로 한국문학을 이끄셨던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그해 겨울은 따뜻했을지 몰라도 올겨울은 결코 그렇지 않네요”라는 글을 올렸다. 소설가 김영하 씨는 “박완서 선생님이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에 쓰신 ‘그리움을 위하여’라는 단편의 서두를 다시 보니 예사롭지 않다”면서 작품을 소개했다. ‘어머니 돌아가실 때도 눈이 많이 왔다…노인들이 춥도 덥도 않을 때 죽기를 소망하는 것도 봄 가을이라고 죽기가 덜 서럽거나 덜 힘들어서 그렇겠는가. 다 자식들을 생각해서지. 그러나….’

교보문고 서울 광화문점은 22일 고인을 기리는 특별 코너를 마련했다. ‘문학의 큰 별 박완서 작가님 별세’라는 안내와 함께 고인의 작품 20여 종을 모아 진열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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