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때까지 남는건 머리에 담은 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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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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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양선 ‘젓갈 할머니’ 이번엔 1억 넘게 들여 국어사전 벽지 초등교 전달

22일 서울 노량진수산시장의 ‘기부왕’ 류양선 할머니가 39년째 지켜온 자신의 새우젓 가게 ‘충남상회’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류 할머니는 35년 동안 150여 명의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책 기부를 해왔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22일 서울 노량진수산시장의 ‘기부왕’ 류양선 할머니가 39년째 지켜온 자신의 새우젓 가게 ‘충남상회’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류 할머니는 35년 동안 150여 명의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책 기부를 해왔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먹을 것 사줘봐야 똥밖에 더 돼? 돈으로 줘도 흥청망청 쓰는 거 금방이야. 죽을 때까지 남는 건 책 읽고 머릿속에 집어넣는 것밖엔 없어.”

서울 노량진수산시장의 ‘기부왕’으로 잘 알려진 류양선 할머니(77)는 22일 기자에게 “기부에는 책만 한 게 없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번에는 도서 구입이 쉽지 않은 도서산간지역 초등학교에 국어사전을 1억여 원어치 보냈다고 했다. 류 할머니는 노량진수산시장에서 39년째 새우젓 가게인 ‘충남상회’를 운영하고 있으며 35년 동안 수십억 원 상당의 기부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할머니는 이달 초 ‘도서 할부 구입’에 나섰다. 지난해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에서 발간한 국어사전 1억850만 원어치 201세트를 사고 5차례에 나눠 대금을 납부하기로 했다. ‘선금’ 3000만 원은 고려대 측에 전달했다. “기부는 계속 하고 싶은데 지금 수중에 돈이 없으니 나눠 내는 거야. 이제 김장철 대목이니 한창 장사해서 또 주고 또 주고 해야지”라고 했다. 민족문화연구원 이종현 팀장은 “책값을 깎아주겠다고 했는데도 할머니는 한사코 정가를 내겠다고 고집하셨다”며 “할머니의 열정에 감동해 학교에서 50세트를 추가해 전국 초등학교 및 중학교에 발송했다”고 말했다.

류 할머니는 그동안 150여 명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10만 권에 가까운 책을 전국 학교에 기부했다. 1998년과 2008년에는 고향인 충남 서산에 있는 한서대에 경기 광명시 임야와 건물,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임야 등 할머니 소유 부동산을 대학발전용지로 기부하기도 했다. 한서대 관계자는 “우리 대학에 기부한 부동산만 30억 원 정도의 가치가 있다”며 “할머니의 전체 기부액은 50억 원이 넘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정확한 기부 금액을 묻는 질문에 할머니는 “안 적어 두니 몰라. 주면 그만이지 누구한테 얼마 줬는지 그걸 왜 기억해”라며 오히려 호통을 쳤다.

할머니가 기부에 나선 것은 3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연히 섬마을 어린이들을 자신의 가게에서 만나면서부터다. “섬에서는 책을 구하기 힘드니 내가 책을 사서 부쳐주마”고 약속했다가 실제 한권 두권 책을 보내며 기부의 기쁨을 느꼈다. “새우젓 잘 팔리는 게 내 소원이야. 요새는 김장 담그는 사람이 줄어들었는지 김장철에도 젓갈이 잘 안 나가. 이 새우젓 팔아야 애들 책이라도 계속 보내줄 텐데….” 할머니의 마지막 소원도 아이들을 향하고 있었다.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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