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喪中에도 흰옷 금지’ 일제 민족말살 문서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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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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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정섭씨 ‘백의 금물, 색의 착용’ 경고문 입수
1938년 발행… 일상생활까지 노골적 통제 입증

애국지사 후손 심정섭 씨는 27일 일제가 전쟁 준비에 광분하면서 “일반인은 물론 상(喪)을 당한 사람들까지 흰옷(백의) 입는 것을 제한한다”는 내용이 담긴 경고문을 공개했
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애국지사 후손 심정섭 씨는 27일 일제가 전쟁 준비에 광분하면서 “일반인은 물론 상(喪)을 당한 사람들까지 흰옷(백의) 입는 것을 제한한다”는 내용이 담긴 경고문을 공개했 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백의는 금물(禁物)이오. 색의(色衣)를 착용하시오.’ 일제강점기인 1938년 9월 1일 조선총독부의 지시로 충남 예산군 등이 발행해 배포한 경고문에 담긴 문구다. 경고문에는 심지어 상(喪)을 당한 사람조차 흰옷을 입는 것을 제한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일제가 전쟁 강제동원을 본격화하면서 우리 민족의 상징인 흰옷을 입지 못하게 하는 등 철저한 민족 말살정책을 자행했음을 뒷받침하는 경고문이 27일 처음으로 공개됐다. 가로 25.2cm, 세로 18cm 크기의 전단인 이 경고문에서 일제는 흰옷 대신 염색을 한 옷을 입고 다녀야 하며, 대상은 남녀노소를 구분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상을 당한 사람들이 상가를 벗어날 때는 흰옷을 입는 것을 금지하고 그 대신 상을 당했다는 표시를 부착하라는 황당한 명령이 적혀 있다.

상하이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역임한 백강 조경한 선생의 외손자이자, 구한말 의병 주촌 심의선 선생의 증손자인 심정섭 씨(67·광주 북구 매곡동)는 이날 한일강제병합 100년을 앞두고 동아일보에 이 경고문을 공개했다. 1959년 고교 1학년 시절부터 50년이 넘게 독립운동이나 친일행위와 관련된 자료를 모아온 심 씨는 올 3월경 대전의 한 고물상에서 이 경고문을 입수했다.

조선총독부는 중-일 전쟁을 일으킨 뒤인 1937년 12월경 “조선인들이 흰옷을 입고 음력설을 쇠는 것을 없애라”고 전국 행정기관에 지시했다. 이 경고문은 각 행정기관이 치밀하게 흰옷 착용금지 정책을 강요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자료다. 일제는 흰옷 착용금지 강요 이후 신사참배나 창씨개명 등 각종 민족 말살정책을 더 노골화했다. 조범래 독립기념관 학예실장은 “이 경고문은 처음 공개되는 것”이라며 “일제가 전쟁 강제동원 준비를 본격화하면서 생활 속 민족문화까지 말살하려 했던 것 같다”고 평가했다.

심정섭 씨가 공개한 흰옷(백의) 착용 금지경고문은 일제가 중-일전쟁을 일으킨 직후인 1938년 제작한 것이다. 경고문 발행기관에는 행정기관과 친일어용단체는 물론 면단위 조직까지 참가해 치밀했던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심정섭 씨가 공개한 흰옷(백의) 착용 금지경고문은 일제가 중-일전쟁을 일으킨 직후인 1938년 제작한 것이다. 경고문 발행기관에는 행정기관과 친일어용단체는 물론 면단위 조직까지 참가해 치밀했던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경고문을 공개한 심 씨는 일제가 군용기 제작비용 헌납을 홍보하는 전단도 함께 공개했다. 심 씨가 50여 년 동안 모은 자료는 현재까지 5000여 점에 이른다. 광주에서 국어교사로 일해온 심 씨는 틈나는 대로 자료를 구하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다. 월급의 상당 부분을 귀한 자료를 사들이는 데 털어 넣는 바람에 아내 김영남 씨(63)가 10여 년간 파출부 일을 하기도 했다. 2004년 광주 송원여자정보고 교감을 끝으로 교단에서 물러난 뒤에는 독립운동과 친일자료집 4권을 펴냈고 내년에는 5번째 자료집을 발간할 예정이다. 심 씨는 “민족정기를 회복하는 데 작은 보탬이라도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독립운동 자료 등을 50여 년간 수집해 왔다”며 “다시는 나라를 빼앗기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뜻에서 그동안 모은 자료를 하나하나 정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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