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우리가 죽기만을 기다리는지 모르지만 끝까지 오래 살아서 꼭 사과를 받아내야지.”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모여 사는 경기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 집’의 이옥선 할머니(82)가 요즘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15세 때 위안부로 끌려가 모진 고생을 한 이 할머니는 2000년부터 매주 수요일 “나들이를 가야 한다”며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을 찾는다. 기승을 부리는 동장군도 할머니의 ‘나들이’를 막지 못한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문제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 열어온 ‘수요 집회’가 13일로 900회를 맞는다. 정대협 측은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일본에서도 이슈화하기 위해 900회 집회는 현지 시민단체와 함께 도쿄, 후쿠오카 등에서도 열 계획이다.
수요 집회는 1992년 1월 8일 수요일 당시 서울 종로구 수송동에 있던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시작됐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20여 명이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 당시 일본 총리의 방한을 앞두고 손해배상 등을 요구했던 것. 일본 정부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할머니들은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수요일마다 집회를 이어가기로 결정했다.
수요 집회는 1997년 일본 고베(神戶) 대지진 때 피해자에게 위로를 건네는 것으로 시위를 대신했던 것과 공휴일을 제외하고는 매주 열렸다. 2002년 3월 500회 시위부터는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이어진 집회’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정대협은 집회 참가 연인원을 총 5만여 명으로 추산한다. 숨어 지내던 할머니들은 수요 집회와 함께 당당히 모습을 드러냈다. 매주 집회에 참가하는 길원옥 할머니(82)도 그렇다. 위안부였다는 사실이 부끄러워 세상과 담을 쌓고 지내던 할머니는 요즘 “내가 아니라 일본이 창피하게 생각해야 한다”며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수요집회를 지킨다.
그러나 할머니들은 한(恨)을 풀지 못하고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있다.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225명 중 생존자는 88명. 최고령 이순덕 할머니는 올해 93세다. 김동희 정대협 사무국장(36·여)은 “한파에 몸이 상하실까 봐 할머니들에게 집회에 나오시지 말라고 권유할 정도”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여전히 군위안부의 존재를 공식 인정하지 않고 있다. 1996년 유엔인권이사회 권고안과 2007년 7월 채택된 미국 하원 의회 결의안 등도 소용없었다. 일본 정부는 최근 태평양전쟁 당시 강제노역에 동원된 할머니 7명에게 후생연금 탈퇴수당으로 99엔(약 1300원)만 지급해 분노를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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