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범 살해 사건에 매달리는 시나리오 작가 수진(‘라라 선샤인’), 10년 사귄 남자친구를 ‘예쁘장한’ 남자에게 뺏긴 호정(‘헬로우 마이 러브’)…. 최근 2주 간격으로 개봉한 두 영화는 각각 김아론 감독(33·사진)의 데뷔작과 두 번째 장편 영화다. 여성의 시선으로 여성의 심리를 들여다본다는 두 영화의 공통점 때문에 여성 감독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김 감독은 1976년생 남자. 아론은 그의 본명이자 성서에 나오는 모세의 형 이름이다. 26일 서울 광화문에서 그를 만났다.
“영화는 감독이 들여다보고 싶은 창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들여다보고 싶은 게 여자의 마음이거든요. 영화 ‘왓 위민 원트’에서 남자 주인공이 여성의 생각을 읽었던 것처럼, 저도 미묘한 여성 심리를 꿰뚫어 보고 싶어요.” 평소 선글라스 끼는 걸 좋아한다는 그는 “지하철에서 사람들을 관찰하며 어떤 유형일지 분석하는 게 취미”라고 말했다.
2007년 동국대 영상대학원을 졸업한 김 감독은 충남 아산 순천향대 법대를 졸업한 뒤 영화 ‘이중간첩’ ‘청연’의 연출부를 거쳐 한때 잡지 카탈로그의 모델로 활동했다. 학부 2학년 때 정당방위를 주제로 모의 법정에 참여한 경험이 ‘라라 선샤인’의 출발이 됐다. 자살(단편 ‘온실’) 동성애(‘헬로우 마이 러브’) 등 쉽지 않은 주제를 다뤄 왔지만 성폭행 피해 여성의 심리를 그린 ‘라라 선샤인’만큼은 특히나 어려웠다고 했다.
“주인공은 여성이지만 성별을 떠나 보편적인 감성으로 이해하려 했어요. 그런데 성폭행 피해 여성은 또 얘기가 달랐어요. 여성 인권단체를 통해 자료를 조사했지만, 과연 이들의 상처에 내가 얼마만큼 다가갈 수 있을지 고민이 됐어요. 여자를 이해하는 건 머리로만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거죠.”
졸업 작품이자 데뷔작인 ‘라라 선샤인’이 복수에 관한 어두운 내용을 담고 있는 반면 ‘헬로우 마이 러브’는 아기자기하고 발랄한 로맨틱 코미디다. 그는 요즘 두 작품과 전혀 다른 스릴러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주인공이 무언가에 쫓기는데 거기에는 대통령의 음모가 숨어 있다는 줄거리다. “촬영 편집보다 어려운 게 시나리오”라는 그에게 더 큰 고민은 따로 있었다.
“다들 남자 주인공을 얘기하네요. 하지만 아무리 소재와 주제가 좋아도 첫 관객인 감독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으면 좋은 영화가 될 수 없죠. 그런 점에서 이번 작품도 또 한번, 여자가 주인공이 될 것 같아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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