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 스승 ‘사랑의 눈’, 1mm오차 잡았다

  • 입력 2009년 9월 12일 02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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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 조적 종목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이태진 선수(오른쪽)와 이 선수를 지도한 서울 용산공고 구만호 교사. 이 선수는 이 대회에 출전하려 취업을 미루고 용산공고에서 조교로 일했다. 사진 제공 서울 용산공고
제40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 조적 종목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이태진 선수(오른쪽)와 이 선수를 지도한 서울 용산공고 구만호 교사. 이 선수는 이 대회에 출전하려 취업을 미루고 용산공고에서 조교로 일했다. 사진 제공 서울 용산공고
용산공고 구만호 교사, 책 통째 외워 기능 전수
기능올림픽 벽돌 쌓기서 제자에 금메달 안겨

“눈이 잘 안 보인다고 제자가 성공하는 모습까지 못 볼 수는 없지요.”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제40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서 제자 이태진 선수(18)가 목에 금메달을 걸 수 있도록 지도한 서울 용산공고 구만호 교사(47). 금메달이 확정되자 이 선수는 “구 선생님이 안 계셨다면 금메달을 못 땄을 것”이라며 15분간 울먹였다.

이 선수가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종목은 1mm 오차를 다투며 벽돌을 쌓는 조적(組積). 그러나 구 교사 컴퓨터 화면에는 글씨 한 글자 한 글자가 주먹만 한 크기로 뜬다. 구 교사는 망막세포가 퇴행하는 망막색소변성증을 앓고 있어 앞을 거의 보지 못한다. 2007년 8월에는 장애 1급 판정도 받았다.

올 2월 용산공고를 졸업한 이 선수는 이번 대회에 출전하려고 취업을 미뤘다. 구 교사도 이 선수를 지원하려고 전근을 두 차례 미뤘다.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아 텍스트 파일을 음성으로 읽어주는 프로그램을 통해 책을 ‘듣고’ 정보를 모았다. 나중에 다시 책을 보고 확인할 수 없어 모든 내용을 통째로 외웠다. 매일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학교에서 재단, 벽돌 마름질, 미장, 줄눈작업 같은 기능을 학생들에게 전하는 데도 열심이었다.

원래 건축디자인을 전공한 구 교사는 “2004년 조적을 맡고 있던 동료 교사가 병가를 내는 바람에 ‘대타’로 조적과 인연을 맺게 됐다. 조적을 잘 몰라 수상 경험이 있는 학교에 무작정 찾아가 노하우를 알려달라고 조를 때도 많았다”며 “혼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학생들과 의견을 나누고 함께 문제를 풀기 위해 궁리한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구 교사와 이 선수는 이번 대회 연습을 하면서 작업 전 도면을 면밀히 분석해 난도를 5단계로 나누고 등급마다 벽돌 한 장을 쌓는 시간을 쟀다. 오차가 1초를 넘어서면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법을 찾는 과정을 반복했다. 대회 두 달 전부터는 화장실 가는 것 때문에 집중력이 흐트러질까봐 배변 시간을 규칙적으로 조절하는 약도 처방 받았다. 구 교사는 “우리나라에서 벽돌은 한물 갔다고 생각하지만 유럽처럼 친환경 건축물이 인기를 끌면 벽돌 건축가들이 다시 대우받게 될 것”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한편 이번 대회에 최연소(17세) 국가대표로 참여한 서울로봇고 최문석, 김원영 군은 한국 대표 선수 중 최고점을 얻어 이 대회 MVP로 뽑혔다. 두 학생은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를 활용해 로봇을 제어하는 모바일로보틱스 종목에서 금메달을 땄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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