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 든 두 소녀 “포스트 장미란? 우리가 있잖아요”

  • 입력 2009년 6월 26일 02시 58분


여자 역도 기대주 문유라(왼쪽)와 이희솔이 서울 태릉선수촌 역도장에서 묵직한 바벨 디스크를 쟁반 들듯 가볍게 맞잡고 환하게 웃고 있다. 원대연 기자
여자 역도 기대주 문유라(왼쪽)와 이희솔이 서울 태릉선수촌 역도장에서 묵직한 바벨 디스크를 쟁반 들듯 가볍게 맞잡고 환하게 웃고 있다. 원대연 기자
■ 세계 J역도선수권 3관왕 문유라-이희솔

문, 中1때 입문 소녀장사
이, 투포환서 전향 늦깎이
2012 올림픽金기대주로

“에이! 남자가 그거 하나 못 들어요? 우리보다 약하네.”

24일 서울 태릉선수촌 역도장. 두 소녀의 웃음소리에 넓은 역도장이 쩌렁쩌렁 울렸다. 사진 촬영에 필요한 역기를 두 손으로 힘들게 옮기는 기자를 보자 이들은 깔깔 웃었다.

이제 갓 성인이 된 문유라(19·경기도체육회)와 이희솔(20·한국체대). 이들은 21일 루마니아에서 끝난 세계주니어역도선수권대회 여자부 63kg급과 75kg 이상급 경기에서 나란히 3관왕을 차지했다. 장미란(26·고양시청) 이후 새 기대주를 찾던 국내 역도계는 이들의 등장에 기뻐하고 있다.

○ 여자라서 반대…투포환 선수로 뛰기도

어렸을 때부터 20kg짜리 쌀 포대를 거뜬히 옮기며 남다른 체력을 과시하던 문유라는 부천여중 1학년 때 교내 역도대회에 우연히 나갔다가 본격적으로 역도의 길을 걷게 됐다. 문유라는 “어머니가 처음에는 ‘사내아이도 아닌데 무슨 역도냐’면서 반대했지만 이제는 든든한 후원자”라며 웃었다. 이희솔은 온산중 3학년 때 늦깎이로 입문했다. 이희솔은 “처음에는 투포환 선수였지만 우연히 역도 코치의 눈에 들어 바벨을 들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부모님 없이 할머니, 언니와 지내왔다. 구김살 없이 활발한 그에게 역도는 희망이다.

이들이 장난치는 모습은 꼭 친자매 같다. 태릉선수촌에서 하루에 10시간이 넘게 꼭 붙어 지낸다. 김기웅 역도 여자 대표팀 감독은 “한 사람만 인터뷰하면 한 명이 삐친다”고 귀띔했다.

○ 장미란은 우상이자 넘어야 할 상대

장미란은 이들에게 특별한 존재다. 이희솔은 “미란이 언니로 인해 역도를 보는 사람들의 눈이 달라졌다. 우리에게는 우상과도 같다. 세계 최고의 선수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메달을 딸 수 있는 후보들”이라고 두 선수를 평가했다. 3년 남은 올림픽에서 이들이 금메달을 따기 위한 여정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다. 문유라는 같은 체급의 김수경(제주도청), 김보라(원주시청) 등과 경쟁해야 한다. 이희솔은 장미란이라는 거대한 산을 넘어야 한다. 하지만 이들의 표정은 밝았다. 문유라는 “경쟁이 도움이 된다. 경쟁이 없었다면 지금 자리에도 오지 못했을 것이다. 희솔이 언니도 미란 언니가 있기 때문에 더욱 앞만 보고 열심히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역도가 마냥 좋다는 이들에게 ‘왜요’라고 물어보았다. 대답은 명쾌했다. “힘들지만 자신의 한계를 향해 달려갈 수 있어요.”(이희솔) “그걸 넘어서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을 거예요.”(문유라)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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