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년-25년만에… 늦게 쓴 서울대 학사모

  • 입력 2009년 2월 26일 03시 00분


▼“전쟁 때문에…” 82세 이한구 옹▼

“졸업 소감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어요. 죽기 전에 졸업장이나 받자고 시작한 공부였는데….”

1946년 서울대 개교와 함께 입학한 ‘개교둥이’ 이한구 옹(82·사진)이 입학한 지 63년 만에 졸업을 한다.

26일 열리는 서울대 학위수여식에서 졸업장을 받는 이 옹은 서울대가 문을 연 1946년 사범대 영어과에 입학했다. 독일 연극에 관심이 많았다는 이 옹은 2년 동안 영어과에서 공부하고 1948년 문리대 독어독문학과로 편입했다. 그러나 졸업이 얼마 남지 않은 4학년 1학기에 6·25전쟁이 터지면서 학교는 문을 닫았고 이 옹도 공부를 중단해야 했다.

“전쟁 통에는 부모님을 모시고 피란을 다니면서 생계 문제를 해결해야 했어요. 전쟁이 끝난 뒤에도 생계를 해결하느라 학업을 계속할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한때 독일로 유학을 갈 계획으로 돈을 모으기도 했지만 사업이 실패하면서 이 옹의 꿈은 멀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나이가 더 들기 전에 학업을 계속하기로 마음먹은 이 옹은 지난해 6월 서울대 측에 재입학원을 제출했고 지난 학기에 3학점짜리 ‘독어독문학 논문 쓰기’를 수강했다.

허리가 좋지 않아 지팡이를 짚고 등하교를 해야 할 정도로 거동이 편치 않았지만 이 옹은 꿋꿋이 강의를 들었고 ‘카프카의 생애와 문학’을 다룬 졸업 논문으로 학사모를 쓰게 됐다.

서울대 인문대는 26일 졸업식에서 이 옹에게 졸업 증서와 함께 감사패를 수여하기로 했다.

▼“가난 때문에…” 트로트가수 현자 씨▼

무명의 트로트 가수 현자(본명 양미정·44·사진) 씨가 서울대 입학 25년 만에 학사모를 쓴다.

1984년 서울대 가정학과에 입학한 그는 아버지 사업이 부도나면서 1년 만에 학교를 중퇴하고 클럽 등 밤무대에서 트로트 가수로 활동해 왔다.

그는 “단칸방에서 여섯 식구가 끼니를 거르기 일쑤였던 내게 공부는 사치였다”며 “돈부터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학교를 그만두게 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가수 활동을 하면서 생활 형편은 조금씩 나아졌지만 못 다한 배움에의 갈증을 견딜 수 없어 2006년 서울대 소비자아동학부에 재입학했다.

가수 활동과 학업을 병행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지만 한참 어린 친구들의 도움 덕분에 학업을 마칠 수 있었다.

그는 지난해 9월 서울대에서 콘서트를 열어 얻은 수익금 600만 원을 장학금으로 써 달라며 학교에 기부하기도 했다.

그는 “복학해서 학교를 다니다 보니 점심 값을 걱정하는 후배들이 의외로 많아서 놀랐다”며 “가정 형편 때문에 공부를 그만둔 예전 내 모습이 후배들에게서는 보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기부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현자 씨는 졸업 후 6개월 정도 영어 공부에 매진한 뒤 대학원에 진학할 계획. 그의 목표는 어렵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아동상담을 해 주는 ‘노래하는 강사’가 되는 것이다.

우정열 기자 passi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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