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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10월 9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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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일본 대중문화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떨쳐낸 것이 가장 큰 수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일관계 전문가인 오구라 기조(小倉紀藏·사진) 교토대 교수는 8일 한국이 일본 대중문화 개방 10년을 통해 얻은 것을 이같이 정리했다. 오구라 교수는 그동안 한일 간 문화교류 행사에 관여해 왔으며 NHK방송에서 ‘한국어 강좌’를 진행하기도 한 지한파(知韓派)다.
고려대 일본연구센터가 마련한 ‘신(新)한일관계 파트너십 공동선언’ 10주년 기념 심포지엄 참석차 방한한 오구라 교수는 “개방 전엔 일본 대중문화가 한국 시장을 잠식할 것이라는 우려가 컸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한국 대중문화의 일본 진출이 두드러졌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 일본 대중문화가 일부 마니아를 중심으로 활성화된 반면 일본에서는 사회 전반에 걸쳐 한류 붐이 일어난 원인을 양국 간 ‘시대적 가치관의 차이’에서 찾았다.
한국의 드라마 영화 등 대중문화 콘텐츠에는 뚜렷한 정체성과 유교 사상을 중시하는 전근대적 사상이 담겨 있지만 현대 일본 문화엔 허무주의나 감성 등 탈(脫)근대적 가치관이 주로 나타난다는 것.
특히 오구라 교수는 ‘잃어버린 10년’을 겪으면서 정체성에 대한 욕구가 커진 일본인들이 한국 대중문화를 통해 해답을 찾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과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주인공들은 현상을 바라보고 느낄 뿐 뭔가를 이겨내겠다는 의지나 용기가 없다”며 “반면 한국 드라마의 이성적이고 책임감 강한 남성상과 시련을 극복하는 사랑 이야기가 일본인에게 대리만족을 느끼게 했다”고 주장했다.
“기무라 다쿠야, 쓰마부키 사토시 등 일본 남자배우들은 작품 속에서 친근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만 부각됐죠. 반면 ‘겨울연가’의 배용준은 주어진 운명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전근대적인 강한 남성상을 보여줬습니다.”
오구라 교수는 한류 붐 이후 NHK가 ‘대장금’에서 모티브를 따온 사극을 제작하는 등 일본에서 한국 문화 배우기가 한창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일 대중문화가 서로 다른 가치관과 매력을 지닌 만큼 활발한 교류를 통해 보완하고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남원상 기자 surreal@donga.com